자연인과 자본주의
최종 수정일: 8월 22일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조금 더 명쾌해지는 것 같다.
나는 자본주의가 그나마 괜찮은 체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빈부격차나 배금주의 같은 문제는 있겠지만, 어쨌든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지 않았던가.
다만 요즘 느끼는 자본주의의 폐단이 하나 있는데, 나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면 "전문가의 독점" 정도가 되겠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듯, 분업은 자본주의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각자 하나의 일을 맡아 잘 해내면, 혼자서 모든 것을 할 때보다 총생산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논리다.
그렇게 자본주의는 세상의 모든 행위를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분한다. 이를테면 노래는 가수가 하고 나는 무대 아래에서 따라 불러야 한다. 피아노는 조성진이 치고 나는 관객석에서 감상해야 한다. 수다마저도 연예인들이 떨고 있으면 나는 TV 앞에서 그걸 듣고만 있다. 사유와 지식마저도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하면,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듣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수민만큼 음악을 못하고, 임윤찬만큼 피아노를 못 치며, 침착맨만큼 말을 재미있게 하지 못하고, 월가아재만큼 분석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면 소위 "전문가"에게 예술과 사유를 넘겨주는 편이 훨씬 더 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나는 직접 누릴 수 있는 그것들을 빼앗겼고, 그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 역시 일이 되어버린 탓에 즐거움이 반감된다. 어떤 측면에서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교회가 괜찮은 장소라고 느껴졌던 이유도 이런 부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종교적 믿음을 떠나서, 교인들이 직접 찬양을 하고 율동을 하며 연극을 올리지 않던가. 설령 그것이 엉성하고 촌스러울지라도, 그 안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나누는 자본주의적 문법을 벗어나 내가 직접 예술을 향유할 수 있었으니까. 아마추어리즘의 복권의 장소였던 것이다.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내일은 저 일을 할 수 있어야 진정 이상적인 삶이라고.
나 스스로를 컴퓨터과학도, 혹은 AI 연구자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거부감이 들었던 건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내 일에 꽤나 진심이고,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쓰게 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나를 지나치게 많이 설명하게 되는 건 좀 싫다. 그래서 "I am an AI researcher"보다 "I do AI research"라고 자기소개를 하는게 내 나름의 소심한 저항 방식이다.
사실 나라는 사람은 자연인으로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것 같다. 엄마는 바람처럼 왔다가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곤 하는데, 어쩌면 그 피가 조금 섞여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에게도 욕망이야 그득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늘 있다. 그래서 물건을 많이 사고 무언가를 과히 소유하는 것 자체에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다. (물론 내가 지금 돈이 너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이걸 좀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개인주의적 인간'과 '관계주의적 인간'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구태여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싶진 않지만, 대략적인 느낌을 설명하자면 이런 예시가 있겠다. 어떤 연구자들은 "I want to make an impact through this and that research" 같은 어휘 표현 자체에 반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게 상당히 자의식 과잉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I want to contribute..." 정도로 표현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들 주장한다. 전자가 관계주의에 가깝다면, 후자는 조금 더 개인주의적 태도라고 볼 수 있겠다. 나는 좀 더 후자스럽긴 하다. 예시로, 스타트업 씬의 "change the world"라는 어휘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네가 뭔데 세상을 바꾸려 드는데. 아, 좀 더 정확하게는, 그게 본질적으론 개인의 욕심이면서, 그게 남 만을 위한다는 식으로 내세우는 것이 좀 괜히 심통이 난다는 것이다.
아무튼, 개인주의적 인간은 나와 세상 사이에 한 꺼풀 막을 두고 살아가며, 자연인으로 존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렇게 존재하기란 매우 어렵다. 가장 피부로 와닿는 것은 결국 생활비다. 아무리 기본적인 생활만 유지하려 해도 주거비가 나가고 (자가라 해도 관리비와 보유세는 나온다), 식비가 든다. 결국 끊임없이 소비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근로를 통해 돈을 벌거나 아주 윤택하여 자본 소유를 통한 소득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님 모아둔 돈을 까먹거나). 결국 나는 죽을 때 까지 돈을 위해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관계형적인 행위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아니 사실 내가 깔고 앉은건 공동체가 낸 세금으로 구축한 인프라이니 애초에 타인과 관계를 맺은 것이니 말이다. 그냥 마음 한구석, 정말 저 와아안전 구석에 불편함이 있다. 이런 자본주의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좋을지는 앞으로 차차 고민해봐야 할 문제 같다.
출퇴근 길에 Rick Rubin의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Capitalism is simply the system we have operated in for so long. It's not necessarily the way it has to be, and I don't believe it's necessarily the reason humanity has come so far. I think the metaphorical dangling carrot in the capitalist system is an excellent motivator for the first type of person you describe: a more self-focused person who has a selfish desire (which is not necessarily bad). They want to be the one to change the world, they want to be the one ot have a legacy, they want to be known. The type of person who thinks like this and succeeds is rewarded greatly in our system. The collectivists who succeed are rewarded as well,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