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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내는 법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24년 5월 12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월 4일

기말고사 기간만 되면 도서관이 시끌시끌하다. 학교 커뮤니티에 몇 년째 올라오는 얘기인데, 지금까지도 바뀔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서관으로 꾸역꾸역 출석한다. 방에서 공부하기 더럽게 싫으니까 그렇다.


지금껏 시끄러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자리를 옮겼다. 가서 얼굴 붉히고 따질 시간에 다른 자리를 찾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 한 번 그렇게 자리를 세 번이나 옮긴 적이 있다. 그게 너무 열 받았다. 이런 씨부럴, 매너 없는 인간들 때문에 왜 애먼 내가 피해를 봐야 하는가?


할 말 못해서 화병이 제대로 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내 나름의 프로토콜을 세웠다. 바로 삼진 아웃이다. 한 번은 경고하고 참는다. 두 번도 경고하고 참는다. 하지만 세 번은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 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이게 상당히 괜찮은 전략이다. 두 번 경고로 일이 수습되면 최상의 시나리오다.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테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고 세번째로 넘어가더라도, 난 그 싸움에서 웬만해서 절대 질 수가 없다. 두 번의 경고를 통해 나는 타인을 충분히 존중했고, 그 덕에 화를 낼 정당한 명분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대로 실천해봤다. 맞은 편 두 친구가 의자를 붙이고 쑥덕이고 있었다. 한 번 웃으며 언질을 주니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한 5분 동안 조용하더니, 다시 데시벨이 스멀스멀 올라갔다. 그래서 이번엔 얼굴을 살짝 구기며 다시 경고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 둘의 대화는 여름 밤 모기 소리 마냥 나를 괴롭혔다. 한 번 신경이 쓰인 이후론 그 소음이 차단이 안 되었다.


개빡쳐서 그대로 들고 일어나서 제대로 화를 냈다. 떠들거면 나가서 떠들라고, 당신들 때문에 공부에 내가 도저히 집중이 안 된다고. 네 시험만큼 내 시험도 중요하다고. "지금 내 말이 장난 같냐"는 말은 좀 과했던 것 같긴한데, 그것 말곤 꽤 적절하게 화를 냈다고 본다. 다행히도 바로 수긍하고 미안하다고 하더라. 매너 없는 친구들은 아니고, 그저 그들의 대화가 그렇게까지 거슬릴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서로 시험 잘 보라고 하고 좋게 마무리했다.


언제부터인가 화를 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당장 도서관 소음 같은 문제에서도, 나는 아래와 같은 사고과정을 거쳤다:

  • 지금 내가 열 받는 이유는? -> 공부하는데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 그럼 열 받지 않으려면? -> 공부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으면 된다.

  • 그럼 화를 내면 문제를 해결이 될까? -> 화 내고 싶은 건 그냥 내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 세워봤자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 그럼 올바른 방법은? -> 내가 자리를 옮기면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나는 언제까지 양보만 해야하나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몇 번 착취를 당하니 악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화를 내도 되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화를 내고픈 욕망은 결국 타인 위에 군림하겠다는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자기검열을 단행했다.


하지만 오늘 하나를 깨달았다. 바로 오늘 내가 말을 뱉고 상당히 상쾌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쾌함은 남을 찍어눌렀다는 찝찝한 쾌감이 아니었다. 내 의견을 피력했고, 그것이 존중받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건강한 상쾌함이었다. 저번 일기에서 말 했듯, 역시 "기분"이 중요하다.


요즘 철학책 읽을 시간은 없고, 유튜브로 겉핥기식으로 떼우고 있다. 그 중 "폭력은 무엇인가"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대충 아래와 같다:

  • 폭력이 쓰이는 이유는? -> 폭력은 폭력의 행사자가 원하는 바를 얻고자 쓰이는 도구이다.

  • 폭력이 왜 유용한가? -> 맞으면 아프니까. 즉, 폭력은 피해자가 자유보다 목숨과 고통 없음을 우선할 때 효력을 발한다. 반대로, 목숨에 미련이 없는 사람에겐 폭력은 효과가 없다.

  • 폭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 폭력은 주체성을 가진 인간을 사물화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물화가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며, 화를 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영상에서 말하기를, 폭력은 크게 두 가지 양태를 갖는다고 한다: 굴복하거나, 저항하거나. 후자의 경우, 역사적으로 강자는 반항하는 이들을 죽여왔다. 즉, 시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맥락에선 전자와 후자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시몬베유에 따르면, 폭력에 굴복했다는 것은 "노예"가 되었다는 것, 즉 인격적 주체성을 잃었다는 것인데, 이는 시체가 된 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고로, 폭력이란 인격을 없애는, 인간을 물건으로 만들어버리는, 즉 "사물화"의 행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에 저항 하는 것은 사물화에 저항하는 것이다.


괜히 어설프게 주워들은 철학적 개념을 들고와서 필요 이상으로 글을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결국 요지는 간단하다. 내 권익이 침해가 당할 때 소리내지 않고 자리를 뜨는 것은 양보가 아닌 굴복이다. 아주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인간의 필수요건인 주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고로, 화를 내는 것은 남 위에 군림하려는 악한 마음이나, 그저 내 가오 지켜보겠다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폄하 될 것이 아니다. 그건 나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고결한 행위라고도 볼 수도 있는거다.


물론 화를 참는 사람은 전부 노예라는 극단적인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를 빌미로 마음에 안 들면 쌈닭 마냥 일단 무작정 달려들고 보겠다는 멍청한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살아가면서 부당함을 겪어도 참아야 하는 때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 것은 틀린 생각이라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리고 가능하다면, 화는 꼭 내야 한다. 그건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내가 내 할 말을 뱉고서 느낀 상쾌함은 그냥 지나가는 기분으로 가벼이 여기고 말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인간적인 존엄을 지켜냈기에 일어난 신체의 반응일 수도 있다. 반대로 화를 무작정 참아서 울화통이 터지는 것 역시, 나라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응당 지켜야할 존엄을 잃었기 때문에 자극 된 통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화를 내야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되는 상황에 놓일 때, 나는 항상 실리적인 부분만 생각했다. 즉, 화를 내는 것이 내 문제를 해결하는가를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재무제표에 새로운 항목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존중받고 있는가? 내가 사물화 되고 있는가?" 어쩌면 이것이 그 놈의 실리주의보다 더 중요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P.S. 아 물론,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거나 정을 많이 준 사람이면 얘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키워드는 '폭력의 비용'. 일단 남겨둔다). 나는 먼 사람한테 강하고 가까운 사람한테 약한 원강근약이다. 물론 안 그런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하지만 오늘은 피곤하니 그 얘긴 나중에 하도록 하자.


생각이 덜 익어서 이 정도 졸필 밖에 안 나온다. 좀 더 무르익으면 다시 쓰든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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