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 고생
- Minwu Kim
- 2024년 3월 6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5월 10일
<아몬드>였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었나, 암튼 둘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작가의 말에 대충 이런 얘기가 쓰여있었다: "나는 대단한 풍파나 굴곡 없이 지내온 인생에 대해 부끄러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와선 나에게 얼마나 많은 축복이 주어졌는지에 대해 감사한 마음 뿐이다".
나도 비슷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누구나 괴롭거나 아픈 일을 피하고 싶어하지만, 한 편으론 오만 고초와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선망을 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선 남들에게선 찾아 볼 수 없는 깊이가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혈액암 투병을 한 허지웅씨라든가, 현대판 파우스트를 찍는 월가아재라든가, 그런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 풍기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그에 반해 나는 살아오면서 어려움이랄게 없었다. 그게 참 감사하면서도, 한 편으론 "그래서 나란 사람이 깊이가 없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괜히 그런 이야기를 하나쯤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고초에 자기 자신을 의도적으로 밀어넣을 사람은 없다. 죽을 병에 걸린다든가, 집안이 파산한다든가,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난다든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한다든가... 이러한 불운을 과연 누가 감히 바랄 수 있겠는가. 설령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부정 탈까봐 곧바로 황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퉤퉤퉤 할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나름 고초라고 할 수 있는 일을 겪은 것 같다. 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으니까. 사실 그 전에도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역경"이나 "고난"이라는 커다란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사소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떳떳하게 "이 정도면 나도 마음 고생 충분히 했지" 할 수 있는 발언권 같은 게 생긴 느낌이다.
기대했던대로 힘들었던 만큼 배움이 있는 것 같다. 그 덕에 내 방어기제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덕에 내 부박함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 덕에 타인과 세상을 헤아리는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여전히 그 어려움 속의 배움들을 하나하나 소화시키고 있다. 내 생각이 이렇게 단기간에 급변한 적은 살면서 거의 없지 않았나 싶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다. 저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고생을 해본 사람들 뿐이다. 고생을 해봐야만 거기에 깨달음과 배움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고생을 안 한 사람은 그걸 모른다. 그 가치를 모르기에 고생을 사서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알더라도 앞서 얘기했듯 고생을 사서 하려다가도 퉤퉤퉤 할 것이다. 고로, 고생의 "자의적" 구매자는 없다. 모두 "타의적" 구매를 할 뿐이다. 다른 말로, 고생이 주어지냐 마느냐는 오로지 하늘에 달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닥쳤던 불운도 하나의 행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수의 초인을 제외하곤 자신을 의도적으로 곤경에 빠뜨릴 사람은 없다. 내 의지에 관계 없이 불구덩이에 던져져서 제련 되었으니, 그건 어쩌면 운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것도 감사한 일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인생의 목적도 행복을 추구하고 불행을 피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온 몸으로 오롯이 받아내는 것이 여행자가 응당 가져야할 마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런 경험들은 삶에 또 하나의 기억할 만한 서사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물론 이건 그나마 살만해졌으니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다만은, 아무튼 그렇다.
아련한 회포풀이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물론 고생한 건 맞는데, 여기서 더 가다간 너무 필요 이상의 호들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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