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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이십오년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24년 12월 31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월 2일

2022년 부터였다. 마흔 편의 글을 쓴 이후, 한 해의 마지막 날 타자기를 누르는 행위는 어느덧 신성한 성격마저 띄게 된 것 같다.


사실 비장하리만큼 준비되었던 지난 3년과는 다르게, 올해는 아직 새해를 받아들일 채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것 같다. 마음 같아선 한 1개월 더 늦추고 싶다. 유보하면 생각이 익을 줄 알았는데, 이번엔 좋은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글이 벌써부터 좀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드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작년의 오늘 내가 쓴 글은 15분도 안 되어서 썼는데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며, 12월 31일은 이 날 만이 가진 기묘한 힘이 있다. 절대 놓칠 수 없다. 그래서 늦게나마 적어본다.





지난 한 해는 표면적인 성취보단 내면의 근본적인 가치관의 재건에 집중했다.


변화는 대게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지난 한 해는 그 변화의 폭이 아주 커, 나 자신이 변화의 궤적을 오롯이 체감할 수 있었다. 어떤 관점에선, 나는 1년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변화는 아주 전방위적으로 벌어져, 몇 마디 말로 축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대로 적어보자면, 어진 마음을 품는 것, 천지불인 만물위추구의 확률론/운명론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것, 선악의 상대성을 이해한 것, 감당할 만큼만 감당해보는 것, 나사를 풀어본 것 등이 있을 것 같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사고방식은 꽤나 튼튼한 뿌리를 내린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올 한 해가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정말 감사한 한 해였으며, 먼 훗날 내가 나의 이십대는 돌아볼 때, 아마 2024년을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였다고 회상하지 않을까 싶다. 그 만큼 내게는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나온 얘기이며, 한강 작가도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소설을 하나 집필하고 나면, 한동안은 펜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 동안은 또 삶을 살아내며 비워진 생각의 통을 다시금 채워넣어야 하기 때문이랬다.


나의 올 한 해가 그랬다. 지난 1년 간 스스로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눈 결과, 몇 년치의 이야기거리를 소진한 것 같다.


이제 다시 땅에 발 붙이고 삶을 살아갈 때이다.



"추구미"라는 단어를 새로 알게 되었는데, 꽤 마음에 든다. 25년 나의 추구미는 아직도 여운이 있는 위키드의 수록곡 Defying Gravity로 하겠다.


뮤지컬 속 과잉되고 mawkish한 감정묘사는 섬세함과 거리가 멀며, 개연성도 투박하게 다뤄진다. 갑분춤 갑분노래가 뮤지컬의 특징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어느 순간 거기에 완전히 몰입한 나를 볼 수 있다.


25년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구름 같은 내면의 몽상은 다시 삶의 이야기가 차오를 때 까지 기다리고, 쉽고 단순하게 가시적인 성취를 좇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대가리 그만 굴리고 매일의 하루를 살겠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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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책을 다시 펼쳐봐야겠다. 유튜브 중독 증세가 이제는 우려스러울 정도이다. 집중력이 툭하면 흐트러지거나,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거나, 가끔은 머릿 속이 발열이 되어 가만히 있기 괴로운 수준까지 왔다. 도파민 체계가 심각하게 무너진거다. 그래서 영상 대신 책을 다시 집어든다. 말라 비틀어진 회백질을 채울 때이다. 크게 목표 하지 않고, 한 달에 독후감 한 권이다. 사흘 전 부터 julian barnes의 <the sense of an ending>을 읽기 시작했다. 내 생각엔 이것만 해결해도 나머지 성취는 크게 노력 안해도 비엔나 소시지 마냥 줄줄이 달려올거다.


둘째로, 논문 집필이다. 올해가 지나기까지, "나 자신에게 떳떳한 논문" 3장을 내고 싶다. 하나는 곧 마무리 되어가니, 두 개 더 남았다. 물론 논문의 양에 집착하는 것은 틀렸으나, 양에서 질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3장은 내줘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아무렇게 휘갈긴 논문을 내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나 자신에게 떳떳한 논문"이라고 기준을 정하도록 하겠다. 정량화 되지 않은 목표를 좋아하진 않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게 제일 정확한 지표이기도 하다. 내가 떳떳한지는 나 자신이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연구자"가 되는 것이 올해 커리어에 대한 가장 거시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겠다. 다른 것 생각 안 한다.


셋째로, 말을 좀 예쁘게 할 필요가 있겠다. 나의 말은 은근히 톡 쏜다. 그것이 좋게 작용할 때는 유머라고 보여지지만, 까딱하다간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타인에게 불필요한 상처, 그리고 나 자신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얘기가 될 때가 있다. 아무래도 어릴 때 무한도전을 너무 많이 봤다. 그걸 고쳐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입을 좀 다물어봐야겠다. "경청"이라는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어려운 것 같다. 이건 앞으로 첫 한 달 간 내가 가장 신경 쓸 부분이다. 한 달 동안 모멘텀이 붙는게 어렵지, 그 다음부턴 보다 쉬워질 것이다. 마지 로켓이 대기권을 돌파하듯 말이다. 동시에 책을 읽으면 섬세한 언어에 자주 노출되니 시너지 효과는 덤이다.


넷째로, 사람을 만나야겠다. 나이가 먹을수록 사람들의 삶의 궤적이 너무나도 각기 다르며, 자기 세계에 침잠해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사례를 이제는 주위에서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나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맨날 옆 테이블 사팔이랑 교수님, 집에 가면 또 연구하는 내 친구가 있다. 전형적인 학계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업계에 애정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근시안을 가져, 자신이 마주하는 세계의 편린이 이 세상 전부라고 착각해버리는 실수를 범하기는 싫다. 세상은 넓고, 세상사는 다양하다. 그걸 잊지 않기 위해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나 자신에게 딱 1주일의 유예 기간을 주도록 하자. 1월 6일까지 돌아와 구체적인 방안을 박아두도록 하겠다.





일단 여기까지다. 내가 어떠한 마음이나 생각을 갖겠다는 다짐은 의도적으로 피하고자 한다. 그건 올해 다 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한 해는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두는, 脚踏实地의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니 올해에도 부디 나에게 복을 오기를. 아니, 그 복을 찾아나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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