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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에 대한 개괄적 이해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22년 2월 25일
  • 5분 분량

  원유 얘기하기 전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아주 조금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오늘 러시아가 키예프 침공을 시작했다. 국익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고, 힘 없이는 안전도 평화도 없다. 그저 일이 더 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평소 그냥 생각나는대로 글을 쓴다만, 전쟁이란 주제에 관해서는 함부로 입을 놀리고 싶진 않다. 뭣도 모르고 어줍잖게 나불댄다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뱉어내기 십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미국과 러시아의 기싸움을 이해하는 작은 프레임을 제시하는 것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셀링 (Thomas Schelling) 의 책 "The Strategy of Conflict"은 어째서 핵보유국들이 서로 핵을 터뜨리지 않는지 분석한다. 셸링은 아래와 같이 3단계로 설명한다:



1단계: 메뉴얼 확립


  미국은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만들고 그것을 일본에 떨어뜨렸다. 전쟁을 쉽게 끝내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로써 미국은 "이러한 상황에선 핵을 터뜨릴 것이다"라고 어느 정도 게임의 규칙을 정한 것이다.



2단계: 매뉴얼 탐색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나중가선 미국보다 먼저 수소폭탄까지 확보하게 된다. 그럼 왜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난 미국과 소련은 냉전시대에서 서로에게 핵폭탄을 터뜨리지 않은 것일까. 당연한 소리지만 서로에게 핵을 날린다면 너 죽고 나 죽는 공멸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핵을 터뜨리고 상대는 그렇지 않게 하기 위해선 상대의 매뉴얼, 즉 언제 핵을 떠뜨릴지 정해놓은 규칙을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그 때 부터 KGB와 CIA가 서로 각각 백악관과 크렘린 궁전에 들어가 서로의 매뉴얼 캐내려는 첩보전이 시작됐다.



3단계: 눈치게임


  첩보전이 장기화 되고 서로의 스파이도 많이 처형 당하자 두 나라는 슬슬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 매뉴얼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상대의 매뉴얼을 알아내려고 하는데, 상대라고 다르겠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뉴얼을 알아봤자 소용이 없다. 그렇게 3단계로 접어든다: 미국과 소련은 "우리의 이러이러한 '핵심이익'을 건든다면 진짜 핵미사일 쏠거야" 하며 상대에게 확신을 준다. 좀 더 구어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이 선 넘으면 진짜 너 죽고 나 죽는다"라고 으름장을 내놓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소련의 쿠바 핵무기 배치이다. 스푸트니크 쇼크 (소련이 미국 영공을 지나는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사건이다) 이후로 기세등등해진 소련은 쿠바, 즉 미국의 앞 마당에 핵을 떡하니 가져다 놓는다. 핵심이익을 건드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자 미국도 질세라 터키에다 본인들의 미사일을 배치한다. 네놈들이 선을 넘었으니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소련은 서로의 미사일을 철수 시키는 것으로 사태는 정리된다. 그 후 냉전시대는 서그렇게 살짝살짝 서로 간만 보다가 소련이 쇠망하며 막을 내렸다.



  다분히 이코노미스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 3단계를 이 눈치게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이 정도에서 거두고 원유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원유 거래에 대한 상식적인 부분을 훑어보고자 한다. 원유 거래를 하기 위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1. 국제 정세와 플레이어들의 동향 파악.


2. 원유 가격의 상단과 하단.


이 두가지 정도가 있겠다. 이외에도 차트 분석이 비교적 잘 먹혀들어간다거나, 수요와 공급의 시간차로 일어나는 경기사이클도 있다만 오늘은 저 두가지만 다룰까 한다.



1. 원유 시장의 플레이어들



  원유하면 당연히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 OPEC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겠다. 1960년대에 14개 산유국이 합심하여 설립 된 OPEC은 전세계 crude oil의 40%, petroleum 의 60%, 전세계 매장량의 80%를 보유하고 있다. (설명충 등판하자면 Crude oil은 오직 원유, petroleum은 원유를 비롯한 모든 석유 제품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전세계 공급을 쥐락펴락하는 OPEC의 이 게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하는 것은 두 말하면 입만 아프다. 그것보다 OPEC의 영향력이 최근 들어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사우디의 신뢰도 하락이다. 사우디는 베네수엘라에 이어서 전세계 원유 매장량 2위를 자랑한다. 석유가 많은 만큼 OPEC의 비공식 우두머리이기도 하며 수니파 계열의 리더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사우디가 계속해서 크고 작은 자충수를 두며 본인들의 신뢰도를 깎아먹고 있다.



  사우디는 1980년대부터 매장량을 부풀려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우디의 국영기업 아람코는 본인들의 석유 매장량이 266B 배럴이라고 얘기했지만, 외부에선 컨설팅 업체에서는 70B 배럴을 추정치로 본다든가, 본인들 연간 생산여력이 12.5M 배럴이라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까보면 11M 배럴 언저리라든가, 생산속도 높인다 높인다 하지만 까보니 이라크에서 석유 수입해와서 기한을 맞춘다든가, 심지어 발표하는 GDP나 국가 예산안도 뒤가 좀 구리다든가, 이런 식으로 계속 감당 못할 뻥튀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면 차라리 다행이다. 최근 들어 사우디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하는 짓마다 터뜨리고 있다. 2030 신성장 정책 공갈빵 만들고, 14년 셰일업계 공격하려다 입은 손실 메꾸려고 아람코 상장 시키려다 또 삐걱대고, 카타르랑 외교적으로 삐걱대다 결국 카타르가 OPEC에서 탈퇴하고, 18년에는 워싱턴포스트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로 범지구적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셰일업계 공격의 실패에 있다. 14년 미국에 셰일혁명이 일어났다. 그걸 짓밟기 위해 OPEC 국가들은 그 때부터 석유생산을 폭발적으로 늘린다. 공급을 늘려 가격을 찍어내리는 일명 "가격파괴" 전략이다. 가격을 셰일가스 생산비용 이하로 내려 업계를 짓밟겠다는 계획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석유가격이 내려가자 미국은 기술력으로 자신들의 생산단가를 더 내리는데 성공했고, 결국 사우디를 OPEC국가들만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 두번째 글 "달러"와의 연결고리가 생긴다 (난 이런 거 너무 좋다). 1970년 미국과 사우디의 비밀협약 이후 양국은 현재까지 밀월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의 셰일업계 공격이 이 둘 사이에 큰 균열을 냈다. 이것이 내가 2편 "달러"에서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종말을 언급한 이유이기도 하며, 미국의 반 OPEC, 반 사우디의 도화선이기도 하다. 미국은 현재 셰일업계의 경쟁력으로 사우디를 위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OPEC에 대한 반독점 법안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사우디 내부도 흔들리고, 미국도 부상하는 것도 모자라 러시아까지 이 판국에 끼어든다. 러시아는 원유업계에서 비OPEC 중 가장 중요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의 원유 매장량은 사우디의 1/3 수준에 못 미친다. 하지만 분배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러시아의 모든 원유 파이프라인이 유럽으로 향하는 게 크다. 러시아는 유럽 원유 수입의 1/3과 천연가스 수입의 70%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가 전쟁 문제로 시끌시끌해서 유가가 100달러를 찍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잠깐 삼천포로 빠져서 달러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크림반도 사태 이후 미국은 러시아에게 지속적으로 경제제재를 받아왔다 (제재는 훨씬 더 강력해질 일만 남았다. 글을 쓰는 지금 러시아에 대한 바이든이 러시아에 대한 초강력 경제제재를 발표했다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2-02-24/five-takeaways-from-biden-s-address-on-russia-ukraine-toplive). 이는 러시아의 경제 성장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유 거래의 달러 의존성 탈피의 움직임을 가속화 하기도 하였다. 미국이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포기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이야기는 이란으로 넘어간다. 이란은 세계 10%의 원유 매장량을 갖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국가이다. 이란은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독점적 에너지 공급을 견제하기도 하며, 중국이 유럽에 직접적인 교두보를 확보하는 길목에 있기도 하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렇게 중요한 이란과의 관계를 완전히 파탄내고 말았다. 2015년 이란의 핵문제에 관련하여 미국과 이란과 EU가 JCPOA 라는 협의를 맺은 바가 있다. 이란의 우라늄 보유량을 줄이는 등 핵문제를 해결은 위한 협의였는데, 이란은 이를 위반하지 않고 이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8년 트럼프는 협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협의안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린다. 오죽하면 EU도 그 당시 나서서 "이는 미국의 독단적인 결정이다"라고 반대의사를 밝혔으니 말이다.



  냄새를 빠르게 맡은 러시아는 곧바로 이란에 접근하고 양국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러시아는 UN에서 이란의 손을 들어주기로 약속한다든가, 적극적인 투자를 한다든가, 군사 협력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여러 거부하기 힘든 당근을 준다. 그 댓가 러시아는 이란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유럽에 도달하는 시간을 늦춰 본인들의 독점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카스패 해 합의를 종용하여 이득을 취하기도 하였다.



  트럼프의 핵 협의 파기로 이득을 본 국가는 러시아 뿐만이 아니다. 합의 파기 직후 중국은 신속하게 이란에 접근한다. 중국은 이란의 교통 및 인프라 건설지원을 약속하며 새 원유와 가스 개발에 대한 우선권을 취했다. 이 딜은 중국이 중동과 유럽을 향하는 새로운 길을 터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위안화의 국제화의 큰 진전을 이뤘다. 다시 한 번 탈달러가 가속화 된 것이다.





2. 원유 가격의 상단과 하단



  원유 가격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의 셰일업계와 OPEC & 러시아는 대척점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셰일업계는 저유가를 원하고, OPEC & 러시아는 고유가를 원한다. 기름팔이라면 무조건 고유가를 원하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셰일업계는 그 입장이 조금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유가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다른 산유국의 생산이 증가하여 오히려 손해를 본다. 그래서 셰일업계는 타 산유국이 생산량을 절제할 정도로는 낮되 본인들 생산단가보다는 높은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14년 사우디의 가격파괴전략 실패 이후 미국은 저유가를 버텨낼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전에는 배럴 당 최소 60달러가 필요했으나, 현재는 지속적인 혁신으로 40달러 수준까지 생산단가를 낮추게 되었다.



  다시 옆길로 잠깐 새자면, 사우디의 가격파괴전략이 얼마나 큰 실책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유가를 못 버티고 감산을 하면 셰일업계의 점유율만 늘어나고, 점유율 잡자고 생산을 늘리면 본인들 재정이 파탄난다. 심지어 가격을 올리면 셰일업자들은 파생상품으로 가격변동을 헷지해버린다. 완전히 외통수인 상황이다.



  보다 수치적인 접근으로 들어가보자. 원유가격의 상하단을 결정하는 것은 두가지 요소가 있다 (전쟁 같은 특이케이스는 예외로 치겠다).



  첫번째는 미국의 불편한 가격이다.배럴 당 70달러면 불편하고, 60 달러면 불만족, 50달러면 대략 적정수준이다. 앞서 언급했듯, 본인들 생산단가보다는 높되 타 산유국이 증산을 할 만큼 매력적이지는 못한 가격이 가장 이상적이다.



  두번째는 원유생산의 breakeven price, 즉 손익분기 가격이 있다 (https://data.imf.org/regular.aspx?key=60214246). 손익분기가격 중에서도 정부예산이 적자로 돌아서는 fiscal breakeven price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external breakeven price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후자를 보는 것이 옳다.



  원유가격은 이렇게 명확한 하방이 존재하기 때문에 잘만 활용하면 안정적인 수익은 거둘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사우디의 손익분기 가격이 약 50달러인데, 만약 유가가 약 60달러인 상황에서 미국이 유가가 높다고 불평한다면, 과연 사우디가 증산을 해줄지 답이 쉽게 나온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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