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의 역사 및 일본 국채 시장 분석
- Minwu Kim
- 2022년 6월 19일
- 5분 분량
요즘 엔화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오늘 기준 달러대비 135엔을 찍으며 2002년 이후 최대치, 즉 제일 싼 가격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 (Japanese Government Bond, 줄여서 JGB) 가 이례적으로 파닥이고 있습니다. 뉴스에서 엔저 엔저 거리는게 뭔 소린지 오늘 한 번 싹 훑고 가봅시다.
A. 엔화의 역사적 배경:
얘기는 금본위제 폐지부터 시작합니다. 한 줄 한 줄 가봅시다 (존잼 보장!).
1. 1971년 닉슨 쇼크 (금본위제 폐지 및 신용화폐로의 전환)가 터졌습니다. 달러가 신용을 잃고, 연준이 완화적 정책을 펼치고, 거기에 오일쇼크까지 트리플로 터지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벌어집니다.
2. 물가를 잡기 위해 그 유명한 폴볼커가 나섭니다. 금리를 10%에서 20%로 올려버립니다.
3. 미국은 경기침체를 겪습니다. 중소기업 40%가 줄도산합니다. 제조업 경쟁력도 죽어버립니다. 달러가 비싸니까요 국내 생산할 바에 외국에서 사오는게 훨씬 싸니까요.
4. 하지만 금리는 오르니 달러수요는 넘치기 시작합니다. 인플레이션이 10%여도 금리가 20%이니 10%가 남으니까 말이죠. 그럼 사람들이 다 달러로 환전해서 미국은행에 예금하려 합니다.
5. 달러 대비 타 국가의 화폐가치가 하락합니다. 그 중 특히 엔화가 수혜를 봅니다.
6. 엔화 약세 (이를 엔저, 엔低라고 합니다) 덕에 일본은 가격경쟁력으로 수출을 증대시킵니다. 이 당시 미국의 무역적자 40%를 일본이 담당했을 정도니까요. 여담으로, 필나이트가 나이키를 세우기 전 오니츠카 타이커즈를 일본에서 미국으로 들여온 때도 이때입니다.
7. 미국 경기는 박살이 나고, 일본은 엔저로 돈을 끌어다 모았습니다. 이를 가만히 볼 미국이 아니었죠.
8. 85년 플라자합의에서 미국은 엔화의 화폐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환율조정을 합니다. 큰형님이 까라면 까야죠. 일본은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협의서에 사인합니다.(본인들도 이런 짓 하고 다니면서, 남들이 똑같은 짓 하면 “환율조작국”이라고 비난합니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습니다.)
9. 그 결과 몇개월 만에 엔화가 달러 당 250엔에서 120까지 떨어집니다. 즉 엔화 가치 폭등입니다.
10. 엔화 강세로 일본은 예전만한 수출 경쟁력을 잃습니다. 이 즈음에 일본 제조업이 내리막길을 가고, 그 옆에 있던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었습니다.
11.일본 내각은 수출 대신 내수를 살리기 위해 긴축적 정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6%에서 2%까지 끌어내리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합니다.
12. 규제가 적고 대출도 저렴하니 일본은 너나 나나 집을 삽니다. 도쿄의 부동산은 87-88년 사이 3배가 오릅니다. 주가 역시 광폭하다 할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니케이지수는 아직도 이때의 고점을 갱신하지 못했을 수준이니까요.
13.거기에 캐리트레이드가 성행합니다. 일본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외국의 높은 금리상품을 사는 것을 캐리트레이드라고 합니다. 그 덕에 이 당시 일본은 많은 해외자본을 흡수하였고, 엔화가 준기축통화가 된 이유입니다. 그 당시 외국에는 해외 자산 투자를 하는 일본 주부들을 너무 많아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칭호가 따로 생겼을 정도니까요.
14. 90년대 들어서 일본정부는 경기가 너무 과열되었다고 생각하여 긴축을 실시합니다. 기준금리와 LTV를 올립니다.
15. 일본의 부동산 시장이 한 번에 가버립니다. 거기에 고령화 문제, 지진 같은 자연재해, 경제 구조조정 실패 등이 맞물려 일본은 경기침체의 국면에 빠집니다. 이를 두고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합니다.
16. 2012년 아베총리가 취임하고 아베노믹스를 시행합니다. 3개의 화살이니 뭐니 하는 구체적인 정책이 있는데, 거기까지 갈 필요 없고 그냥 규제 풀고 돈 찍어서 경기 살리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마냥 좋아지진 않습니다. 두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첫째는 근본적인 생산성이고 (고령화 문제 등), 둘째는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취급 받았기 때문입니다.
18. 앞서 말했듯 80년대 일본은 버블경제 당시 무지막지한 해외 자산을 빨아들였습니다. 일례로, 미국의 록펠러센터는 일본 미쓰비시 그룹 소유입니다. 그 덕에 경제위기의 조짐이 보일때 마다 사람들은 엔화를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차고 넘치는 해외자산이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죠. 대표적으로 2016년 브렉시트 당시 자본이 엔화로 쏠리면서 엔화 가치가 120에서 95까지 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4년 간의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는 소리도 그런 것이죠.
19. 아무튼 일본은 아베 취임 후 계속해서 무지막지한 양적완화를 실시합니다. 어떻게든 금리를 내려 내수시장을 진작시키고, 엔저를 만들어 수출경쟁력을 주기 위해서 말이죠. 그 탓에 일본의 부채규모는 GDP의 250%가 넘습니다. 선진국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이죠.
자, 이렇게 50년짜리 시간여행을 빠르게 해봤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죠. 현재의 엔화가 무슨 상황인지 알아봅시다.
B. 엔화의 현재 상태와 일본 내각의 의도
일본은 여전히 저성장 국면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돈을 많이 찍어냈는데 여전히 인플레이션은 2%입니다. 미국과 독일 8% 인플레이션으로 골골대고 있는데 말이죠. 늘어난 시중통화량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힘을 부진한 생산성으로 상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전세계는 긴축적인 기조로 가고 있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타 국가들은 같이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자국통화를 달러로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 달러 대비 가치가 폭락하고 - 외환위기에 취약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독야청청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국채를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 기조를 유지 중입니다. 일본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경제는 수년간 디플레이션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왜 “수렁”이라는 단어를 콕집어 사용을 했냐면, 디플레이션 spiral때문에 그렇습니다. 물가가 떨어진다고 예상이 되면 사람들은 물건이 더 싸질 때를 기다립니다.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심리는 실제로 수요를 떨어뜨려 디플레이션을 더 악화시킵니다. 그럼 소비자들은 또 지갑을 열지 않죠. 이렇듯 한 번 디플레이션이 만성적인 질병처럼 고착화되면 그것을 빠져나오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 이번 인플레이션을 기회삼아 저물가기조를 탈출해보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C. 경기 활성화에 실패할 수 있는 이유
구로다 BOJ총리의 뜻대로만 된다면 일본 경제는 반등을 할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인플레이션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 시키고, 엔저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키워 제조업을 살릴 수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이게 과면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
첫째로는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입니다. 과거의 일본은 막강한 기술력을 토대로 한 제조업 수출 기반 경제였습니다. 이런 수출 기반 경제의 특징은 바로 자국 통화가 평가절하 될수록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경기가 활성화 되는 것이었죠. 수입은 비싸져서 원가상승이 생겼지만,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수출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22년의 일본이 여전히 수출기반 경제인지는 의문입니다. 일본의 제조업을 거론할 때 도요타 빼고는 떠오르는 기업이 없습니다. 화양연화를 누렸던 미쓰비시, 도시바, 소니 등의 기업은 이제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었으니까요. 이제는 오히려 80년대 대호황 시기에 쌓아놓은 자산으로 연명하는 내수시장 기반의 경제가 아닌가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출이 약하다면, 엔저로 인해 얻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출은 안 늘고, 수입물가만 비싸진다면, 오히려 일본 경기에 악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둘째로는 일본 경제의 체력입니다. 일본의 국가부채규모는 GDP대비 2.5배 달합니다. 지금 미국의 총생산대비 1.3배의 부채가 너무 위태롭다고 하는데 일본읜 이의 두배에 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찍어내기도 힘들고, 엔화의 가치가 너무 떨어져버리면 외환위기가 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일본이 못 버티면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은 이미 시체가 되었을겁니다).
물론 “미국도 돈 찍은 마당에 준기축통화국인 일본이 돈 찍는게 안 될 것이 있냐"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아베가 2012년부터 그렇게 엔저를 만드려고 했으나, 세계경제가 위기가 올때 마다 엔고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시장이 엔화를 달러와 같은 안전자산 취급했으니까 말이죠. 아베가 원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일본 경제가 썩어도 준치라는 걸 보여준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말이죠, 돈 찍기는 기축통화국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엔화가 135선까지 갔다는 것은 시장이 더 이상 엔화를 예전만큼 안전자산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럼 돈 찍기의 전제인 “기축통화”라는 조건이 무너지는 것이죠. 양적완화가 부담스러워집니다. 비록 일본은 여전히 세계 최대 순 채권국이지만, 과연 기축통화 지위만 믿고 계속해서 완화적인 정책을 밀어붙일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D. 꿈틀대는 일본 국채시장
이 얘기 하려고 저 멀리부터 돌아왔습니다. 현재 JGB 장기채 금리가 심상치 않아요. 이틀 사이에 0.25에서 0.3까지 두번이나 튀어올랐습니다. GDP 3위 국가의 국채금리가 하루 사이에 두번씩이나 뚜껑이 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일본은 YCC (yield curve control)을 합니다. 기준금리 뿐만이 아니라 장기채 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채권수익률 곡선을 컨트롤 하는 것이죠. 여기서 YCC와 QE, 즉 양적완화랑 다른 점은, 양적완화는 매달 정기적으로 일정량의 채권은 매수하는 것이고, YCC는 장기채의 금리가 목표치에서 벗어날때마다 매입이나 매도를 하여 목표치에 끌어다놓는 것입니다. 이걸 왜 하냐면, 장기채 금리가 오르면 시중금리가 올라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이 가기 때문이죠. (YCC의 역사를 알려면 그린스펀의 수수께끼 까지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면 또 3000자 추가이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이 나홀로 양적완화를 하자 대규모 국채 투매세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국채 투매에는 두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과서에서는 나오는 경우로 금리가 오르며 채권금리가 오르는 것 (채권 가격이 하락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금리 동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아니죠. 두번째는 국가화폐에 대한 불신입니다. 신용도가 낮은 개인의 대출한도가 낮듯이, 일본이 돈을 너무 많이 뿌려 빌릴 돈을 못 갚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국채를 내다파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타국가의 자산은 오르고 있기 때문에 캐리트레이드를 위한 현금화 수요도 있는 것이죠.
이를 버텨내기 위해 BOJ는 모든 투매물량을 받아냈습니다. 금리를 안정시켜 실물경제에 타격이 가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죠. 비록 지금은 0.1의 움직임일 뿐이나 (그림의 40%에 속으면 안됩니다. 분모가 작아서 생기는 허상, 전형적인 통계의 오류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투매 공격이 계속 된다면 BOJ가 백기투항을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결국 금리를 동결시켜 완화적 기조를 유지하고픈 BOJ와, 엔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의심을 품는 이들 간의 싸움입니다.
E. 마무리
요즘 뉴스보면 슬슬 엔화 사라는 얘기들이 좀 나오고 있는데, 무턱대고 “아, 엔화가 싼데 나중엔 다시 회복할테니까 지금 사면 좋겠구나”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BOJ와 시장의 힘겨루기, 그리고 엔화의 기축통화 지위와 완화적 통화정책 간의 저울질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더 가면, 일본의 엔저는 미국이 “용인”해주는 경향이 어느정도 있습니다. 미국이 왜 엔화를 가만히 두고 있나 머리를 굴려보고 있는데, 결국 얘기는 또 다시 미중패권전쟁으로 흘러가더군요. 그 얘기는 나중에 해보겠습니다.
헥헥... 주제를 잘못 골랐습니다. 좀 버거웠네요. 하지만 아무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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