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 심기
-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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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3월 2일
지능과 노동의 가치가 0으로 수렴한다면, 소수의 자본가와 엔터테이너들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생산력 가치 역시 0으로 수렴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세상에선 자본, 즉 "소유권"만이 유의미한 가치가 되려나. 이에 대해선 두가지 주장이 있다.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자본을 축적하라.
아니다. 그 때 가선 물질적 풍요가 오기에, 돈이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후자는 머스크의 말인데, 사실 와닿지는 않는다. 기술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자본주의 시스템 특성상 그건 너무 요원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설령 후자의 미래가 오더라도, 그건 전자라는 고통스러운 과도기를 거친 후 그 다음 차례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도망칠 곳은 어디일까. 암묵지, 자본, 유명세 등등, 다 남들이 많이들 하는 얘기인 것 같다.
다 좋은데, 설령 다 안 되더라도 그냥 살자. 살면 살아진다. 저 많은 인간보다 열등한 종들이 다 자살하지 않고 열심히 살지 않던가. 결국 한낱 동물일 뿐인데.
나라는 일개 개인의 생존을 넘어, 인류라는 종의 존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월한 지능이 열등한 지능을 보듬는 경우는 무엇이 있을까.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이는 흔치 않은데, 상호확증파괴를 제외하면,모성애(혹은 부성애)와 "귀여워 함"이 있다 (개나 고양이 말이다).
무엇이 되었든, 우월한 것이 열등한 것을 어여쁘게 여긴다는 것이 본질이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우월한 지능이 인간은 어여쁘게 봐줄까. 인간이란 종은 흥미로운 종이지만, 초월적 지능이 얼마나 우릴 좋게 볼지는 미지수이다.
조금만 더 몽상을 이어가보자. 이런 절묘한 인과응보가 있다: LLM을 필두로 한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남겨놓은 데이터로 학습이 된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가치를 흡수한 존재, 우리의 시뮬라크르, 내지는 후손이다. 고로, 이 우월한 지능이 우릴 어여쁘게 볼지 말지는, 우리 인간이 타인, 넘어서 타 열등한 종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달려있다.
그 말은 즉슨,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결국 우리 스스로부터 사랑을 해야할지도, 사랑 데이터로 혐오 데이터를 몰아낸다라, 쓰고 보니 뭔 블랙미러 에피소드 같다.
채식을 해야하나 싶다.
(업데이트: 이런 비슷한 얘기를 한다 (11분 경))
너무나도 빠른 세상이다. 뭐든 빠르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도태 된다. 어제의 새 것이 오늘의 옛 것이 된다. 그리고 저 앞엔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마당에, 박사를 따겠다느니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늘 말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는 집중력과 행복을 앗아간다.
"무엇이든 이루려면 시간이 걸린다"라는 믿음을 가진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게 정답일 줄 알았건만, 이 시대에선 또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흔들리는 믿음을 다잡자고 쓰는 글이다. 우직하게 하던 걸 하자. 오늘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아, 그리고 사랑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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