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언어적인 것들
- Minwu Kim
- 2024년 4월 8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월 20일

2019년 7월 상하이 현대 미술관의 클라인 블루 전시였다. 정말 더웠던 날로 기억한다. 파란색으로 빼곡히 채운 바닥을 보며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이건 경탄도 아니고 전율도 아니고, 그냥 마음이 찌르르했달까. 아직도 그게 무슨 감각인지 잘 모르겠다. 말 그래도 형언(形言), 즉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는 감각이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는 아직도 그 감각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나 하는 기대에 이따금씩 미술관을 드나든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고 했다. 한 때 그건 내 믿음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뀌는 것 같다. 언어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때론 언어가 사고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어제 본 <드라이브 마이 카>가 딱 이 얘기를 하고 있다. 세상엔 비언어적인 감각들이 존재한다.
일단 시각의 측면에서 보자.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가 딱 그렇다. 플롯 자체는 별 내용이 없다. 하지만 왕가위 감독은 미장센은 볼 때 마다 놀랍다. 보고 나면 그 여파가 진하게 남는다. 하지만 그 여파가 뭔지는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다. 분위기로 압도하는 모든 영화들이 그렇다. 그게 바로 비언어적인 감각이다.
청각에서도 비슷하다. 프랭크오션의 <Blonde>를 들으면 뭔지 모를 섬세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Self Control>이나 <White Ferrari>의 후렴을 들으면, 이걸 어떻게 사람이 만들었나 싶다. 물론 설명하라고 하면 잘못하겠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이 탁월함을 표현하나 싶어 앨범의 피치포크 리뷰도 찾아봤는데, 그 사람들도 그냥 시대정신이나 악기의 구성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었다. 이 음악이 왜 섬세한 감정표현을 해내는지는 설명하지를 못한다. 어쩌면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 직접 들어봐야 안다. 언어로 비언어적인 것을 담아낼 수 없다.
오감으로 따지지 않으면 '컨셉'이라는 것 까지로 확장할 수 있다. 뉴진스가 그렇다. 어텐션 보고 느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코디며, 음악이며, 안무며, 하나 하나 정교하고 치밀하게 맞물려 있었다. 민희진씨는 평소에 뭘 보길래 이런 날선 감각이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언어, 즉 텍스트에도 비언어적인 것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바로 비언어적인 감각의 달인이다. <노르웨이 숲>이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나 <댄스 댄스 댄스>나, 읽고 나면 은근하게 쓸쓸해지면서도, 그 감각이 마냥 슬프다기보다도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상실을 묘사했다는 것을 알겠다만은, 그게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냥 소설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다. 그걸 두고 비언어적이라고 한다. 직접 읽어봐야만 그게 무슨 느낌인지를 안다.
나아가 일상의 대화에서도 그렇다. 주워들은건데, 사람간의 대화에 있어 내용 자체는 7%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머지는 전부 제스처나 톤 같은걸로 결정된다고 했다. 진짜 그런 사람이 있다. 쥐뿔도 아닌 내용을 뭔가 대단한 것 마냥 얘기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애플의 WWDC.
요즘 비언어적인 것에 부쩍 관심이 간다. 무엇보다도 비언어적인 것을 담아내는 예술가들이 예술하는 방식이 궁금해졌다.
나보고 작가 흉내 내보라고 하면 적당히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글을 써왔으니까. 그들이 예술하는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어휘나 깊이 탓에 퀄리티의 차이만 있을 뿐, 프로세스 자체는 내가 지금 이렇게 글 쓰는 것과 아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찍거나, 작곡을 하거나, 이런 예술은 어떻게 하는건지 감이 안 잡힌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Self Control>에서 후렴에서 목소리를 몇 개를 겹쳐 몽환적인 효과를 만드는데, 이런 걸 어떻게 의도하고 통제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아예 감이 없다는 소리다. 그걸 음악적인 재능, 내지는 천재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비언어적인 것들은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미지의 세계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감각을 한 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계속 하고 있었다. 이런 감각이 살아나면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될 것 같다. 세상엔 참 재밌는게 많다.
런던에서 친구가 카메라 하나를 들고왔다. 후지필름 X100 VI이라는데. 똑딱이 카메라 주제에 250만원이나 한다. 그것마저도 물량 부족이라고 하더라. 유명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찍히는 것 마다 예뻐서 여행 내내 사실상 내가 들고 다녔다. 그 친구한테 팔라 했는데 안 주더라. 비싼 물건의 단점은 비싸다는 것 밖에 없다.
아직 초짜라 사진 촬영의 철학 같이 대단한 건 없다. 그냥 보이는대로 찍어댔다. 그래도 이걸 내내 하다 보면 비언어적인, 이 경우 시각적인 것에 보다 예민해짐을 느낀다. 이 과정이 꽤나 재밌다. 잠들었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비언어적인 감각을 키우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다. 큐베이스 다운받아서 작곡을 해본다든가, 그림을 그려본다든가, 영화를 찍어본다든가 하는 것들이 있겠다. 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품이 좀 많이 드는 일이다. 그것보단 렌즈 조절 몇 번 하고 셔터만 때리면 되는 카메라가 훨씬 가벼운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요즘 무슨 카메라를 사볼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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