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쟁
- Minwu Kim
- 2022년 3월 27일
- 5분 분량
바야흐로 규(硅)석기시대, 즉 반도체시대이다. 첨단 IT 세상에서 반도체는 필수불가결하다. 오늘은 반도체 시장에 대해 가볍게 스윽 훑어보자.
1. 반도체의 중요성
오늘날 반도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두 말하면 입만 아프다. 오늘날은 4차 산업혁멍과 AI의 시대이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IoT, 자율주행, 이런 최첨단 기술들은 더 많고 빠른 계산을 요한다. 그리고 그 계산은 다 반도체가 한다. 반도체가 없으면 다 말짱 도루묵이다. IT산업의 메카의 이름이 테크노밸리, 인터넷밸리가 아닌 반도체의 원자재인 "실리콘"밸리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코로나 이후 반도체 공급난 사태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코로나 이후 수요절감을 예상하여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량을 대폭 낮췄다. 하지만 언택트 수요가 폭증하며 전세계는 오히려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자동차나 가전제품 생산이 중단이 되거나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과학기술'이란 단어로 묘사할 수 있는 것들에는 모두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반도체를 산업의 쌀, 혹은 넥스트 원유라고 부르기도 한다.
2. 반도체 산업구조:
투자자로서 업계 전문지식은 그렇게 깊게 알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 시장을 이해하려면 아주 기본적인 개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짧게 짧게 가보자:
A. 메모리 & 시스템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로 나뉜다. 메모리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반도체이며, 시스템반도체는 "계산"을 하는 반도체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현재 꽉잡고 있는 것은 메모리 쪽이다.
하지만 시장규모와 미래비전을 생각한다면 시스템반도체가 훨씬 크고 유망한 시장이다. 아까 얘기했듯 시스템반도체는 "계산"을 하는 반도체인데, 첨단사업으로 가면 갈수록 반도체의 계산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규모는 메모리쪽 시장의 약 2배이며, 기술의 고도화로 인해 앞으로 그 간격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늘 할 얘기는 주로 시스템반도체 이야기이다.
B. 펩리스 &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는 펩리스(fabless) 기업과 파운드리(foundry) 기업으로 나뉜다. 펩리스는 반도체의 디자인 및 설계를 담당하고 파운드리는 제조를 담당한다. 일종의 기획업체과 제조업체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펩리스 기업에 대해 예시를 들어보자면, 엔비디아, AMD, 퀄컴이 있고, 요즘엔 애플에 테슬라까지 가세 중이다. 이들은 모두 자기 입맛에 맞게 반도체를 디자인하는 일을 한다.
파운드리 기업 중 제일 중요한 것은 딱 두 기업,: TSMC와 삼성전자이다. 물론 미국의 인텔이나 글로벌 파운드리도 있지만, 기술력으로는 이 둘이 가장 압도적이다.
반도체는 효율의 미학이다. 얼마나 적은 전력으로 얼마나 많은 계산을 할 수 있는가의 게임이다. 그래서 반도체를 작게 만들면 만들수록 좋다. 다른 기업들은 10나노 7나노 기술하는 와중에 TSMC와 삼전만 누가 먼저 3나노기술을 실현하느냐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두 회사가 파운드리 산업에선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얘기를 펼쳐보자면,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을 틀리다.
메모리와 시스템으로 나누어서 보자. 일단 메모리 쪽은 삼전과 하이닉스가 꽉잡고 있다. 하지만 첨단산업으로 가면 갈수록 시스템반도체가 더 중요해진다. 시스템 쪽으로 가면 하이닉스는 많이 약하고, 삼성전자는 여전히 키플레이어이다. 하지만 삼전은 펩리스가 아닌 파운드리가 강하다. 남들 것 받아서 만드는 것에 특화 된 곳이다. 정작 핵심적인 특허 (core ip라고들 한다)는 미국의 펩리스 기업들이 갖고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계의 초일류 하청업체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3. 반도체 전쟁 - 미중패권전쟁
사실 반도체 전쟁을 얘기하자면 얘기할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가볍게 훑어보기로 했으니 가장 핵심적인 몇가지 부분만 집어보자. 이런 정치경제학적 시각에 대한 느낌만 조금 가져가도 충분하다고 본다.
미국의 움직임과 중국의 움직임, 두가지로 나누어서 보자:
3-1 미국의 움직임:
미국 정부가 삼전, 하이닉스, 그리고 TSMC등 반도체 기업들을 자국 내로 불러들이고 있다. 미국은 파격적인 감세정책을 약속했으며, 삼전은 최근 텍사스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20조짜리 투자계획을 결정했고, 하이닉스도 10조를 투자하여 실리콘밸리에 R&D 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말만 들었을 때는 "이게 웬 떡이냐", "10만전자 가나?" 싶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막상 그렇지도 않다. 세상엔 공짜는 없고 정치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 미국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반도체 안보문제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생각해보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번 글에서 보다 중요하게 여길 부분은 반도체 공급망이다. 미국은 반도체를 주문하고 대만은 생산을 한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국 내 반도체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이는 미국의 첨단산업을 흔들 것이며, 최악의 경우 전면전으로 갔을 때 첨단무기 생산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스텔스기, 항공모함, 미사일,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는가, 반도체 없이는 생산을 못하는데 말이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반도체 생산시설을 자국 내로 확보하려는 것이다. 설령 대만, 내지는 한국 쪽에 문제가 생겨도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미리 성벽을 쌓는 것이다.
미국의 행보를 보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두가지가 있다:
A. 정보공개요구.
B. 인텔 키우기.
A. 정보공개요구
21년 9월, 반도체 기업들에게 감세를 약속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은 숨겨둔 발톱을 꺼냈다. 미국은 반도체 기업에게 정보공개를 요구했다. 무슨 반도체를 어느 기업에게 어느 정도를 판매했는지, 재고는 또 얼마나 남았는지, 이런 기업기밀 같은 것들 말이다. 비록 이번에는 중요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선에서 유야무야 잘 넘어갔다만, 이는 미국이 반도체 생산업체에 대한 통제권을 쥐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보였다.
이게 무슨 깡패 같은 짓인가 싶기도 하고, 이런 말도 안되는 요구는 그냥 거절하면 되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왜 그런지 설명해보자:
첫째는 경제적 손실이다. 파운드리 기업들은 미국에 수출하진 않고는 먹고 살 수 없다. 지금은 미국이 "우리가 너네 제품 안 사주면 너네들 피곤해지잖아?" 하면 반협박식으로 파운드리 업체에 압박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
둘째는 안보 문제이다. 미국엔 국방물자법 DPA(Defense Production Act) 라고 있다. 미 대통령이 민간 생산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반도체 얘기를 하면서 미 의회에서 DPA가 몇 차례 언급이 되곤 했는데, 반도체 문제를 대놓고 경제문제가 아닌 안보문제로 규정해버린다면, 군사동맹국인 한국은 이를 거절하기 더더욱 힘들 것이다.
B. 인텔 키우기
TSMC, 삼전, 하이닉스에게 정보공개를 요구한지 2주 뒤, 미국 상무부와 국방부가 인텔의 파운드리 산업 투자지원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20년 전만 해도 인텔은 우스갯소리로 "외계인 잡아다가 기술 개발한다"라고 할 정도로 막강한 기술력을 선보인 기업이었다.하지만 그 후 인텔은 진보를 멈췄다. 당장 CPU로 떼돈을 버니 새로운 먹거리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TSMC랑 삼성이 3나노기술 간다고 피 터지게 싸울 때 인텔은 여전히 10나노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붉은여왕 효과의 예시에는 항상 인텔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죽어가는 인텔을 키우고자 하는 것일까. 이 역시 반도체 공급라인 확보에 있다. 아무리 한국과 대만이 미국 우방국이라고 해도 자국기업만큼 신뢰가 가지 않을 것이다. 비록 현재 기술력이 많이 떨어지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들이 100%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좀 더 들어가서, 이 벌어진 격차가 과연 쉽게 좁혀질까에 대한 문제도 있다. 아무리 돈을 들이부어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텐데 말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인텔은 삼전과 TSMC에 미국에 빨리 투자를 하라는 압박을 주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텔을 키워버리거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너희들이 미국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인텔을 키워서 너희들을 배신자로 찍어내버리겠어" 하는 식인 것이다. 한 쪽만 부담이 큰 꽃놀이패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80년대 미국이 반덤핑법을 들먹이며 일본의 반도체 업계를 싸그리 죽여버렸고, 그 덕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큰 것도 있다).
이렇듯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을 대비하며 차근차근 성벽을 다지고 있는 상황이다.
3-2: 중국의 움직임
반도체나 핵심기술을 가진 국가들을 보자.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대만, 한국이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의 동맹국 혹은 우방국이다. 미국 입장에서 여기에 배신자만 없다면 반도체에 한해서는 중국이 뚫을 수 없는 벽을 만들어놓은 상황이다.
그럼 중국은 당연히 그나마 약한 곳을 공략하여 그 벽을 뚫으려고 할 것이다. 그게 바로 대만과 한국이다.
일단 대만 같은 경우, 중국이 계속해서 간헐적으로 대만 쪽에 군사력을 집중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간을 본다거나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만, 최근에 "중국이 가을에 대만을 침공할 것이다"라고 적힌 기밀문서가 유출되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도 이를 모를리가 없다. 그래서 한 번은 남중국해에 있던 미국의 구축함이 항모전단 사이로 진형을 깨고 한 바퀴 슥 들어갔다가 나온 적이 있다. 일종의 무력시위 같은 것이다. 이렇듯 남중국해를 두고 미중 사이에 팽팽한 긴장상태가 유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은 이미 확실히 친미로 노선을 정한 상태이다. TSMC는 중국은 쳐내고 미국 쪽에 철저하게 붙어선 상태이다. 그럼 중국 입장에서 딱 한 국가가 남는다. 바로 한국이다.
예전같은 경우 중국은 산업스파이를 고용한다든가, 아니면 고액으로 한국의 엔지니어들을 빼가서 기술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통으로 중국으로 이전시키지 않는이상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하는 것이 바로 삼성 하이닉스를 중국 내 공장으로 유치하는 전략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5대5 합작으로 중국에서 공장을 짓는 모양새를 취한 후, 천천히 기술을 빼온다든가, 아예 공장을 삼켜버리는 식 말이다.
사실 중국에서 반도체 관련해서 대만에 비해 한국을 압박하는 모습은 드러난 것이 없는데, 장기적으로 중국이 집요하게 한국의 반도체 시장을 노리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으로 보인다.
4. 효율의 비효율화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생산라인을 자국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원론에서 배우는 상대적우위라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이 있다. 각 나라마다 분업을 하여 자신들이 제일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서로 무역을 한다면 효용이 극대화 된다는 얘기이다.
반도체 시장은 이를 잘 실천한, 가장 효율적으로 분업화가 된 산업이었다. 하지만 국제정세가 요동치며 판세가 바뀌고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정치경제학에서는 항상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앞선다. 패권전쟁의 시대인 오늘, 미국과 중국은 무역이 아닌 모든 것을 본인들 손에 확보하고자 하는 노선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효율적인 산업이 비효율화가 되는 흐름을 인지해야만 반도체 투자에 대한 큰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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