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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

10월 11일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17일

쾌차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평소에 안 해보던 기도를 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봤자 챗으로 걱정과 응원 몇 마디 전하는 것 뿐이지만. 부디 별 일 없기를. 내 친구 가슴 찢어지는 건 정말로 보기 싫다.



피난가듯 중국으로 들어간게 3월달 즈음이었다. 중학교 동창들을 거의 10년만에 만난건데, 그 때 나눈 얘기들이 뒷맛이 오래남는다. 


중학교 때는 대체로 좀 불안했다. 성적에 대한 압박도 있었고 인정욕구도 셌다. 공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불안이 많은 성격은 그때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중학교 때는 공부하고 시험 본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때 불행했다고 하소연 하는 건 아니고 (딱히 그렇지도 않았고), 전체적으로 그 시절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모노톤에 가깝다고 얘기하고픈 것이다.


8-9학년 때 담임이었던 수학 선생에 대해서도 그래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성적으로 학생 차별하고, 성적으로 야지 주고, 성적지상주의적인 경향이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유독 두드러지긴 했다만, 성적 압박이야 보편적으로 다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동사후는 내게 천국이었다는 쩡시딴의 얘기에 나머지가 다 동조하는 것은 그래서 꽤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난 그냥 그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들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만 그런거였다면, 그들 눈에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라디오 얘기나, 학교 축제 공연 준비 얘기나, 7학년 담임이 각종 이벤트를 했던 얘기도 나왔다. 그리고 내게는 간신히 기억나는 얘기일 뿐이다. 다 숙제하고 공부할 시간 축내는 활동이라고 생각해 귀찮아했던 기억이다. 참 어지간히 밥맛이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쯤 되니, 나는 중학교, 그리고 어쩌면 고등학교 때까지도 그 나이에 마땅히 했어야 할 고민들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죽어라 공부만 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아무튼 당시에는 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삶에 대한 고민이나 취향을 알아가는 일 같은 것은, 나는 뒤늦게나마 보충 수업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내 생각을 늘어놓는 동기를 나는 나름 잘 인지하고 있다. 글에는 늘 겸손한 척 밑밥을 깔아두지만, 나는 나 자신의 정신적 성숙에 꽤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게 남들이 훨씬 어린 나이에 통과했을 자아의 탐색이었다면 어떨까. 물론 뒤늦게 부족한 걸 채워가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남들이 다 한 걸 지금 하는 것뿐이었다면 약간은 싱거워지는 것이다.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조굼 다른 얘기일수도 있는데, 성공한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성숙할 것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은 자주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성공한 기업가나 명망있는 학자들의 목소리에 늘 귀 기울이지 않던가. 성공한 사람은 대개 지혜롭고,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성숙하다는 삼단논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꽤 큰 착각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사회적 성취는 많은 경우 내면의 성장을 유예시킨다. 그래서 남들이 어리거나 젊을 때 이미 깨닫는 평범한 진리를 뒤늦게 마주하고, 그게 마치 정말 대단한 통찰인 양 떠벌리고 다닌달까.


그리고 어쩌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주 대단한 성취까진 없는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기대하지 않는 깊이가, 사실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미 있는지도 모른다. 평소에 보면 영락없는 푼수 아줌마인 엄마와 불 끈 채 나란히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면 그 바다 같은 마음을 보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별안간 얘기가 엄마 사랑으로 또 빠졌는데,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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