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경기침체는 오지 않는다, 아마도.
- Minwu Kim
- 2022년 6월 5일
- 6분 분량
요즘 경제뉴스가 꽤나 지루합니다. 한 달 넘게 도돌이표 같이 인플레이션 얘기만 합니다. 물가가 잡히니 안 잡히니, 연준이 금리를 올리니 마니, 경기침체가 오니 마니,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떠들어대는걸 몇 주 동안 보고있자니 이제는 좀 지겨워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수익률과 재미는 별개입니다. 비록 저는 인플레이션이 지겹지만 인플레이션은 저를 물고 늘어져 놓아줄 생각을 안 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따분한 거 참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죠.
당연한 소리지만, 경기침체가 올지 안 올지는 때가 되어서야 압니다. 다만 현재 시장의 분위기는 좋지 않아보입니다. 전쟁 탓에 유가는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상하이 봉쇄는 여전하고, 인플레이션도 비록 피크아웃 했지만 여전히 높습니다 (8.5%-> 8.3%). 월마트와 타겟은 어닝쇼크를 맞이했고, 테슬라는 구조조정과 연봉삭감을 예고했습니다. 최근 뉴스 중 호재는 OPEC의 원유 증산 합의 정도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연이은 악재에 시장은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로 가득합니다. 당장 증시만 봐도 계속해서 출렁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럴수록 반대편의 이야기도 들어봐야합니다. 저의 아이돌인 켄 피셔를 필두로 경기침체는 오지 않고 생각하는 긍정론자들이 꽤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경기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지, 오늘은 그들의 논리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시작하기 전에 구태여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제가 "경기침체는 오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이런 논리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고만 하시길 바랍니다. 혹여나 제 글을 토대로 투자결정을 내리는 분들이 있을까봐 괜히 한 마디 얹어봅니다. 저도 아무것도 몰라요.
1. 인플레이션은 경기를 부양한다.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과도한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은 이러합니다:
- 물가가 오른다.
- 화폐가치가 떨어진다.
- 생산비용은 오르고 서민들의 구매력도 떨어진다. 즉, 먹고 살기 팍팍해진다.
그러나 이건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내용이지, 실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봅시다.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품의 가치가 오른다는 것입니다. 그럼 소비자 입장에선 어떻게 할까요? 가격이 올라버리기 전에 빨리 제품을 사고 싶어할 것입니다. 수요가 생기는 것이죠. 이렇게 인플레이션 자체로 경기 부양의 효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럼 당연히 이런 질문이 따라오게 됩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데, 그럼 자금조달비용이 비싸지니 경기가 꺾이지 않나요?" 자, 이건 금융이라는 좁은 세계에 갇혀버린 반쪽짜리 생각입니다. 금융은 오직 명목금리만을 따집니다. 기준금리가 올해 안에 제로금리에서 2-3%까지 뛰기로 예고되었으니 자금조달 비용이 큰 폭은 상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금융이 아닌 실물경제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실물경제에서 봐야할 것은 명목금리가 아닌 실질금리입니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을 뺀 값입니다. 비록 연준이 금리를 인상했지만, 현재 경제는 그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a-b 라는 수식에서, a가 1이 오를 때 b가 2 오르면 a-b의 값은 전보다 1이 줄은 것입니다. 이렇듯, 인플레이션이 금리인상보다 강한 지금은 되려 자금조달비용이 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장 한국만 봐도 대기업들이 차례대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누구는 민간 간섭이 덜한 작은 정부로의 정권 교체 때문이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앞서 설명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금리 하락에 있다고 봅니다. 실질금리가 그 어느 때 보다도 낮은 지금, 현금을 쌓아두는 것 만큼 틀려먹은 움직임은 없으니까요.
2. 연준의 투트랙
두괄식으로 갑니다. 고로 현재 미국의 의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a) 낮은 실질금리를 유지시켜 실물경제를 활성화 한다.
b) 금리를 올려 자산시장의 과열을 억누른다.
a, 즉, "낮은 실질금리를 유지시켜 실물경제를 활성화 한다"는 것은 앞서 다 설명했으니 따로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바로 b, "금리를 올려 자산시장의 과열을 억누른다"는 것에 대해 설명해보죠.
현재 뉴스에서 설명하는 증시하락의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금리가 오른다.
-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밸류에이션 시 할인률 역시 오른다.
- 주가가 떨어진다.
이것도 물론 맞는 말입니다만, 아까 "인플레이션이 경기를 부양한다"는 프레임워크에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조금만 과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20편 - 블록경제] 에서 설명했듯이 코로나 이전 세계경제는 저물가, 즉 디플레이션 기조를 이어나갔습니다. 앞서 인플레이션은 경기부양의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반대로 디플레이션은 경기위축의 효과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는데, 소비자들은 웬만해선 가격이 떨어질 때 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수요가 줄고, 덩달아 생산도 줄죠.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합니다. 그걸 메꾸기 위해 금융업계에서 총대를 메고 투자를 한 것입니다. 기업이 적자가 나도 금융권의 적극적인 투자로 덩치를 불려나갔죠. 이것이 근 몇 년간 VC업계와 증권시장이 갓 잡아올린 활어 마냥 힘차게 팔딱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플레이션 덕에 실물경제가 강한 상황입니다. 이 와중에 금융권 마저 가세하여 돈을 주입하면 버블이 생기겠죠. 이런 측면으로 보았을 때, 금리인상은 금융권, 즉 자산시장을 보다 잠재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없지만 숫자를 들먹여보겠습니다. 제가 또 나름 또 퀀트 지망생인데, 숫자 없이 마냥 스토리텔링만 하기는 자존심 상하니까요. 현재 S&P500의 평균 PER은 대략 20정도 됩니다. PER은 시총을 연수익으로 나눈 값입니다. PER이 20이라는 것은 기업이 이런 이익을 20년 유지하면 기업의 현재 가치만큼 돈을 번다는 것이죠. 그럼 채권 수익률(명목)은 무엇일까요. 현재 미국 10년채가 대략 3%인데, 내가 100달러의 미국채를 사면 매년 3달러의 이익을 본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PER의 역수를 구해봅시다. S&P500의 평균 PER이 20이니, 이것의 역수는 5%가 됩니다. 이를 통해 주식과 채권의 수익률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런 프레임으로 보았을 때, 현재 미국채의 수익률은 3%, 미국주식의 수익률은 5%입니다. 현재 둘의 차이는 2%인데, 추후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리게 된다면 둘의 차이는 더 좁혀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미국채 수익률과 주식 수익률의 차이가 1%까지 좁아졌다고 해봅시다. 채권은 안전상품입니다. 리스크를 감안했을 때 더 많은 자본이 주식시장에서 채권시장으로 가겠죠. 이런 식으로 금리인상은 자산시장의 과열을 막아줍니다.
3. 침체는 아주 단기적일 것이다 - 물가상승의 시간차
이런 시나리오대로라면, 주식시장은 가라앉고, 경기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활성화되는 고물가의 시대가 지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비록 물가는 완전히 잡히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경기는 활성화가 될터이니 경기침체는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성질을 보았을 때 아주 잠깐의 침체기가 올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캉티용 효과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가 오르고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재화마다 물가가 오르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겁니다. 집값, 밥값, 커피값 등등 다 오르는데, 내 월급만 오르지 않는다는 한탄은 다들 한 번 들어보거나 직접 내뱉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사실 그 말은 틀렸습니다. 인건비도 결국은 오릅니다. 하지만 인건비의 특성상 가장 나중에 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름이나 숙박비 같은 것과 달리 인건비는 한 번 오르면 다시 떨어지기 힘들기 때문이죠.
가격이 늦게 오르는 것은 비단 인건비 뿐만이 아닙니다. 경쟁자가 많은, 즉, 가격결정력이 없는 기업과 산업일수록 가격은 쉽게 오르지 않습니다. 최근에 어닝쇼크를 맞은 월마트와 타겟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둘은 서로의 경쟁상대이자 대체제입니다. 만약 어느 한 쪽이 가격을 올려버리면 소비자들은 나머지 한 쪽으로 몰려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월마트와 타겟은 언제 가격을 올리나 서로 눈치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치게임이 길어질수록 기업의 수익성은 더 악화됩니다. 전방위적 고물가 탓에 인건비 등 생산비용은 이미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적 경기침체 얘기를 하고자 꺼낸 캉티용 효과이지만, 여기까지 설명했는데 한 발짝만 더 가보죠.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살아남는 것은 가격전가력을 가진 기업과 산업입니다. 원유가 대표적인 예시죠. 원유 같은 경우는 전쟁 후 가격이 바로 뛰었습니다. 물론 전쟁발 쇼크로 수요의 급상승도 한 몫 했지만, 캉티용 효과의 프레임으로 보았을 때, OPEC은 일종의 카르텔이기 때문에 눈치게임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들끼지 대놓고 회의해서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애플 같이 브랜드 파워가 절정인 곳도 새 제품을 출시할 시 가격을 한 층 더 높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애플이 가격을 올려도 좋다고 사줄 충성스러운 고객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를 보고 가격전가격이라고 합니다. 가격전가력이 뛰어난 기업과 산업일수록 인플레이션 시대에 살아남기 쉬울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옵니다. 아무튼, 인플레이션 탓에 다양한 산업에서 가격상승의 눈치게임이 이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탓에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수익성이 괄목할 만큼 악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단기적으로는 경기침체가 온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짧은 듀레이션의 조정이 지나지 않습니다. 이 시나리오 상으론 대규모 경기침체는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 향후 연준의 정책전망 (뇌피셜 범벅 주의)
네, 시장에 대한 제 뷰는 여전히 바뀐 것이 없습니다. 경기침체의 조짐이 보이면 연준은 다시금 완화적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어쩌면 연준의 속도조절이 벌써 시작되었겠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11월에 중간선거가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금리인상은 단기적으론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절대 좋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백악관과 미국의 여당인 민주당 입장에선 11월에 금리인상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논리로면 상반기에 미리 빅스텝을 몇 번씩 시행한 것이 다 설명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의 과열 역시 어느정도 가라앉은 상태입니다. 일단 인플레이션이 YoY 기준 8.5%에서 8.3%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비록 매우 소폭이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피크아웃을 하긴 했습니다. 주식시장 역시 많이 가라앉아 20년 평균치 쯤으로 회귀했습니다. 그리고 30년 모기지 금리 역시 5%까지 오른 상태입니다. 여기서 더 강한 긴축을 시행하다간 삐끗하고 경기침체를 야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만간 연준이 조금은 완화적으로 나올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님 말고요.
5. 마무리
"나무 대신 숲을 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너무 작은 집중하기 보단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투자에선 그걸 탑다운 방식이라고 부르죠. 하지만 근 약 두 달 간 인플레이션에 대해 공부를 해보니, 과장 하나 없이 약 수십가지의 해석을 본 것 같습니다. 누구는 경제침체가 온다, 누구는 안 온다, 심지어 누구는 닷컴버블 때처럼 증시가 폭락해도 금융시스템은 건전하니 경기침체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까지 봤습니다. 경제라는 것이 너무 다양한 요소들이 얽히고 설킨 복잡계다 보니 여러 해석이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서야 워렌버핏이 "경기를 예측하려 들지 마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단순히 구루의 격언을 듣고 "아 그렇구나" 수긍하는 것과, 직접 나름의 경험들을 해보고 진정으로 의미를 체득하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 매크로 분석이 틀린 얘기 범벅일테지만, 그래도 이런 교훈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으니 충분히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매크로 분석을 앞으로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경제의 흐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것은 투자자의 필수 덕목입니다. 하지만 매크로는 수면 위의 무지개와 같아서 더 깊게 파보겠다고 달려들기 시작하면 되려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연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소설을 쓰고,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이게 내 투자에 도움이 되는 짓인가" 회의감이 들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부턴 스코프를 조금은 좁혀서 공부를 해볼까 생각중입니다. 다음주 글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끝내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