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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것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5월 3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1일

할머니 할아버지 기일 그 하루만큼은 입꼬리를 조금 내리고자 했다. 그게 우리 아빠엄마를 존중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뉴스에서 가슴 아픈 일이 터져도 그 며칠 동안만큼은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조금이나마 머금고자 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곳에서 그 정도 도리를 지키는게 맞지 않을까 해서였다.


다만 그게 조금만 지나치면 과도한 도덕적 엄숙주의에 빠져 자신을 옭아매게 된다. 사실 기뻐해선 안 되는 이유는 당장 뉴스 1면만 봐도 차고 넘친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기뻐할 사람은 기뻐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전에 이런 생각을 하면 "어쩔 수 없다"가 내 결론이었다. 사람의 마음 속 공간은 한정되어있어, 본인의 내집단 밖의 일에는 무심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런 생각에 이르면 아주 상쾌하진 못하다. 명쾌함보단 체념의 맛이 더 진하다.


그러다 이틀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제 새벽 세시 넘게까지 논문을 썼다. 데드라인은 닥쳐오고, 할 일은 산더미고, 결과는 좀 애매하고. 너무 하기 싫어서 아침 일찍 출근 준비하는 가족들을 줌으로 호출해서 징징댔다. 이럴 때는 늘 놀려먹는게 우리 가족의 격려방식이다. 그럼 마냥 심각한 일이 훨씬 가벼워진다.


누나랑 아빠는 출근을 하고, 엄마는 동네친구들이랑 호텔에서 조식 먹으러 간다고 했다. 본인만 팔자 좋다고, 미안하댔다. 놀리면서도 은근히 멋쩍은 웃음이었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들면 엄마라도 신바람 났으면 좋겠다. 다들 죽상이면 그거야 말로 죽을 맛 아닌가? 물론 내가 고생한다고 엄마가 꼭 더 편해지지는 않겠지만, 나의 고생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행복으로 치환되어야지만 견딜 맛이 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 그 말도 있지 않은가. 아빠가 통닭을 사오는 날은 아빠가 밖에서 유독 힘들었던 날이라고. 자식새끼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아서라도 자신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픈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보면, "행복해 할 줄 아는 것"도 귀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내가 설령 고난을 겪더라도, 그것으로 버틸 힘이 되어준다.


고로, 나 역시 그런 귀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를 정말 아껴주는 몇몇의 사람, 그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나의 행복은 그들의 행복이 되고, 나아가 살아갈 힘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잘 지내는 것도 내 사람들을 위한 책임감있는 행위가 아닌가, 이 역시 그들을 아끼고 존중하는 방식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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