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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평오

8월 23일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29일

아직 정리가 다 된 생각은 아니다. 다만 돌이켜보면 이 생각 자체는 꽤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수면 위로 올려놔야 그 다음이 있든 말든 할 것 같다.


‘국평오’는 “대한민국 국민 수능 평균은 5등급”의 줄임말이다. ‘대중은 개돼지’ 같은 말과 비슷하게, 대중의 지적 능력이나 판단력이 그다지 높지는 않다고 비꼴 때 쓰인다.


하지만 타인의 인식 수준을 가늠하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다. 사람의 수준이라는 것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고 바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꽤 오랜 기간 지켜봐야 보이는 부분이 많다. 게다가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평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타인을 함부로 깔보고 만만하게 보는 것이 단순히 인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건 생존전략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상대를 우습게 보고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고 있고 훨씬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면 결국 곤란해지는 쪽은 나다.


그걸 쉬운 말로 하면 존중이라고 하며, 그건 어떤 면에선 일종의 상호확증파괴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은 비슷비슷하다는 걸 누구나 경험적으로 체득하게 된다. 내가 기분 나빠할 만한 일이라면 상대도 대체로 기분 나빠하고, 내가 무시당했다고 느낄 만한 상황이라면 상대도 비슷하게 느낀다. 그래서 타인과 교류할 때는 자연스럽게 “내가 저 입장이면 어떨까”를 기본 전제로 깔게 된다.


그 말은 결국 나와 상대의 인식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일단 가정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별다른 근거도 없이 내가 더 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이런 태도는 생존전략의 측면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좋은 것 같다. 밥맛 없는 인간으로 사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공감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역지사지의 사고는 의식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자동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보면 타인을 하대하는 순간, 내가 당하기 싫어하는 짓을 내가 하고 있다는 불쾌감도 따라온다. 자기혐오 프리패스이다.


문제는 이 원칙을 모든 영역에 그대로 적용하면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커리어다. 예를 들어 뉴스에서 취업난 이야기가 나오고, 또래 청년들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들린다고 해보자. 그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대부분이 저 정도면 나도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또 다른 의미에서 메타인지가 안 되는 것일 수 있다. 물론 나보다 잘난 사람 널리고 널린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5등급"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인간은 평등하지만 노동시장에서의 몸값도 평등하진 않으니까.


주식시장도 그렇다. 시장을 이겨보겠다고 깝치다가 털리기 십상이다. 칼시의 배당율은 기가 막히게 calibrate 되어있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손은 잘 작동한다. 하지만 동시에 딥시크발 나스닥 쇼크 같은 어이 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도 같은 주식시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초과수익을 올리려면 결국 대중이 못 보는 것을 봐야한다.


지금 계속 정확히 정리가 안 되는데, 아무튼 타인, 나아가 대중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해서 헷갈리는 것 같다. 무엇이 최적의 전략일까. 밥맛 없는 건 너무 싫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저평가 하는 짓도 싫다.



우월감을 갖지 않고 우위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한가?

  • 그럼 반대로 열등감을 갖고 열위를 인식하는 것은 가능한가?

  • 되는 것 같은데, 왜 반대는 어렵지?

  • 어릴 때 부터 겸손은 미덕이라고 배워온 탓에 내재된 방어기제인가?

  • 아님 평생 우위 있던 적이 너무 적어서 그런가? 늘 학생이고 사초생이었으니까. 그리고 막내였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짓은 안 해봤으니.

  • 아니, 사실 우위인 적은 있었는데, 그 때는 그냥 이런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일까?


대중은 어디까지 맞고 어디까지 틀리는가?


나아가 어디까지 대중에 기대서 가야 하는가?


아 몰라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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