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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광기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23년 12월 25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5월 8일

"미친놈이 미친놈을 알아본다". 몇 달 전에 초청받아 놀러 간 한 스타트업의 컨퍼런스에서 본 슬로건이다. 자매품으로는 "우리는 도라이들이다" 정도가 있겠다. 이런 인간상은 내 주위에 생각보다 흔하다. 특히 스타트업 씬에서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배배 꼬인 걸수도 있겠지만, 저런 말을 들으면 오글거려 죽을 것 같다 (물론 놀러 간 저 회사 분들은 대단하신 분들이 맞다. 진짜 잘 나가는 중.) . 다른 사람이 "쟤는 미친놈이다"라고 평가하는 거면 모를까, 본인이 본인 입으로 "나는 미친놈"이라는 말을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그다지 멋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본인이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진짜 미친놈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대개 "가짜 광기"다.


저런 말을 뱉는 것은 과연 무슨 심리일까. 머리를 굴려본 결과 일단 내 결론은 이렇다:


남들에게 "나는 미친 놈"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것은 사실 "나는 미친놈으로 보이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에 가깝다. 이걸 다르게 얘기하면 그 사람은 본인이 미치지 못해서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걸 고백하는 것이다. "빈수레가 요란하다", "돈에 관심 없다는 놈이 돈에 미친 놈이다." 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멋드러지게 헤세의 <데미안>을 인용해보자면,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건 우리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것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아님 정신분석학적으로 보았을 때 칼융이 제시한 "투사"의 개념이 이러한 것이다.


동기부여 강연을 안 보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성공한 강연가들 중에는 본인이 성공한 경우가 많다. 당장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부류만 봐도 사이먼사이넥, 개리브이, 그랜트카돈, 우리나라에는 켈리최 회장, 김미경 등등이 있다. 그 사람들은 대게 비범한 사회적인 성공을 했기 때문에 강연이 팔린다. 성공을 했다는 건 실제로 본인이 치열하게 산사람이었다는 걸 일부 증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은 본인이 뱉은 말을 지키는 사람들일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사람은 되려 그렇게 열심히 행동했던 자신에 대한 향수를 곱씹는, 과거의 멋졌던 자신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본인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남들에게 "열심히 살라" 설교하고 다니기 보단 자기 일 하기 바쁘지 않을까. 아 물론, 본인 사업을 위한 마케팅을 위해 동기부여 강연을 하는 부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경우라면 그 사람들의 말은 더더욱 걸러들어야 한다. 그건 조언자가 아닌 장사꾼이니까. 그런 영상을 보고 fomo와 조급함을 느끼면 이미 그 사람은 장사꾼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이다.


얘기가 좀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보자. 정말 자신이 있으면 본인이 절대 내세우지 않는다. 왜냐, 본인이 본인의 특출남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애써 티내려 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알아준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떳떳한 사람은 그래서 조용하다. 김연아가 소치에서 금메달을 강탈 당했을 때를 떠올려 보자. 김연아는 판정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그러니 주위 사람들이 알아서 그 분을 위해 싸워주었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도 아무 대응을 하지 않은게 놀랍기만 하다. 분명 속에선 분통이 터졌을텐데 말이다. 그게 진짜배기, 진짜광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린 이런 사람들을 흔히 "내실있다", "외유내강이다" 라고 묘사한다.


아무튼, 그럼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fake it till I make it을 할 것이냐, 아니면 침묵을 지킬 것이냐. 난 줄곧 후자였던 것 같다. 하지만 작년에 처음으로 전자를 실천해보았다. 내 나름의 각오를 주위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그렇게 한 이유는 말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거는 피그말리온 효과, 혹은 서동요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남들에게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쪽팔려서라도 내 말에 투영된 이상적인 나 자신의 모습을 따라가지 않겠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각오를 남들에게 보여줬다는 것은 본인이 아주 자신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쉬운 일이었으면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남들에게 선포하는 각오는 대게 어려운 것이다. 우린 "다이어트를 할거야", "꼭 이직할거야", "시험 잘 볼거야" 같은 말은 하지만, "오늘 밥 먹을거야", "오늘 잘거야"라는 말은 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왜냐, 애초에 쉬웠으면 각오를 안 했을테니까.


전자가 맞나 후자가 맞나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내리지 못했다. 각자 장과 단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점이라면 내가 내 뱉어놓은 말이 있어서라도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고, 나쁜 점이라면 자기기만의 위험, 그리고 그 탓에 자책과 자기혐오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메꾸는 것은 결국 현실의 나를 그 이상에 매칭시키는 것 뿐이다.


어찌보면 주위사람들에게 선전포고 한다는 것은 대출을 받는 것과 같다. 대출을 받으면 일시적 현금흐름은 높아지지만, 그 댓가로 노력과 수신이라는 이자를 지불한다. 대출을 통해 성공적으로 레버리지를 당길 수도 있지만, 그 이자를 내지 못하면 파산이라는 형에 처한다. 이 비유를 굳이 더 세세하게 분석해보자면:  


1. 올라간 현금흐름이란 단기적으로 본인이 얻는 평판, 그리고 그로 인한 추가적인 동기부여이다. 첫째, 평판이란 이런 것이다: 자기의 포부를 열심히 떠들면 일단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오, 이 친구는 치열하게 사는 친구구나" 생각하게 되니까 말이다. 둘째, 추가적인 동기부여는 이런 것이다. 말의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맨날 "나는 열심히 산다"를 외치는 사람이 "나는 탱자탱자 유유자적한다"하는 사람보다 결실을 맺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주위의 시선에서 비롯된 피그말리온 효과는 덤이다.


2. 파산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된 깎아먹은 자존감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놓았고, 남들도 본인이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질 못하니 괴로운 것이다. 남들은 속여도 자기 자신은 못 속인다. 그럼 세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 행동해서 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킨다.  

    둘,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괴로워한다.  

    셋, 리플리 증후군에 걸려 자신마저 속여버린 괴물이 된다.  


좋은 삶을 살려면 선택지는 오직 첫번째, 바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통찰을 가져다준다: 흔히들 "이룬 듯이 행동하라", "긍정의 말을 뱉어라", "꿈을 크게 가져라"라고들 한다. 분명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행동"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걸 다시 대출의 비유를 들자면 이러하다: 그런 얘기는 "이 대출 상품은 이자도 낮고 효용도 크다." 라고 하며 대출 상품의 우수성만 광고한다. 하지만 결국 대출은 대출이다. 이자가 존재한다. 그 "노력과 행동"이란 이자를 내지 못하면 결국 파산이다.


이런 이야기의 끝은 대게 상투적인 얘기로 귀결된다. "입만 놀리지 말고 실천을 하라"는 진부한 얘기를 기다랗게 늘여뜨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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