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808에서 Motif로
-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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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7월 12일
떠나는 일은 영 늘지 않는다. 한두 번도 아니고 꽤 여러 번 해봤으면 이제는 좀 무뎌질 법도 한데, 공항에 앉아 있으면 여전히 시원섭섭하다. 떠나는 건 언제나 기대와 아쉬움이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다. 아무래도 인간이라는 종은 마을적 존재에서 도시적 존재로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떠남이 버거운 데에는 개인의 성정도 한몫한다. 나는 현상유지 성향이 꽤 강한 사람이다. 물건 하나를 사면 닳을 때까지 쓰고, 토트넘이 강등권을 허덕여도 탈덕하지 못한다. 아이유 좋다고 떠들어댄지도 어느덧 12년이 되어 가고, 주식 단타에는 영 소질이 없으며, 멀티태스킹은 전혀 못한다. 사람 하나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마음이 꺾이기까지는 많은 힘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성정 탓에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을 떠나는 일은 내게 유독 벅차다.
그런데 난 내 일에서만큼은 지독할 정도로 변덕스럽다. 초반에 확 꽂히면 불 같이 몇 달을 달려들다가도,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잡히면 금세 권태를 느낀다. 지금까지 내 이십 대의 적성 찾기는 늘 그렇게 확 타올랐다가 팍 식는 일의 반복이었다. 만족하지 못한 채, 늘 더 크고 더 위대한 무언가를 좇아온 것 같다. 그것이 어쩌면 허상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이 나라를 떠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연구라는 일에 꽤나 진지해진 지금, 한창 스파크가 튀던 2년 전과 달리 내 배움은 다소 정체되어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또 한 번 도약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것이 맞다고는 생각한다.
문제는 맞는 결정이라고 해서 쉬운 결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속 남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가야 한다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둘 다 진심이라서 어느 쪽을 택해도 조금은 아쉽다.
생각해 보면 내 이십 대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떠나고, 적응하고, 정 붙이고, 또 떠나고.
아무튼, 결국 지금의 이 복잡한 마음은 두 성정이 충돌한 결과다. 관계에서는 머물고 싶어 하고, 일에서는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 젊은 나이에 이곳저곳을 유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가슴 설레는 일이고, 많은 사람이 쉽게 누리지 못하는 특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결국 혈혈단신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하게 만드는 감각 역시 피할 수 없이 따라온다.
양단의 마찰이 생길때면, 난 결국 늘 쓴맛을 삼켜내며 떠남을 택하게 되는 것 같다. 죽는 날까지 소년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은 결국 하나같이 뜨거운 가슴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이었으니까. 이렇게 삶이란 것에 나름의 진지한 태도를 고수하는 이유도 결국 내가 소년성이라는 가치를 꽤나 고귀하게 여겨서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안정보다 모험을 택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당장 나만 해도 ‘언제까지 이렇게 역마살 낀 삶을 이어가야 하나’ 싶은 고민이 든다. 전에 한 번 유열이 형이 박사들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도 결혼은 꽤 일찍들 한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 결국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는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은 소망을 품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이렇든 저렇든, 아직까지 내 행보는 그럭저럭 소년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후한 자가진단을 내려본다.
백미러는 여기까지.
이걸 놓치면 영영 못 가. 달이 차오른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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