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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nse of an Ending - Julian Barnes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1월 3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월 21일


재밌게는 읽었다만, 수작인지는 모르겠다. 맨부커상 수상작이래서 기대했건만, 조금은 아쉬웠다. 아니 그냥 내 취향이 아니었다고 하자. 관점은 다양하며, 상 탄 데에는 이유가 다 있을테니.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기 듣기 좋은 말을 하도록 어떻게든 유도하는 부류. 솔직하게 "나 잘했지" 하는거면 몰라, 아닌 척 사람을 유도하는 얕은 수가 보이면, 괜히 고약한 심보가 돋아 듣고파 하는 칭찬은 일부러 더 안 해줬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이 딱 그러하다. 힘을 모았다가 마지막 몇 페이지에 반전을 터뜨린다. 그 아이는 아드리안과 베로니카 사이의 아이가 아니라 베로니카의 엄마인 사라였다는 것이다. 다 읽으면 책상 앞에서 "이러면 깜짝 놀라겠지" 하고 있었을 작가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그리고 이건 내가 문학에서 바라는 바는 아니다. 내가 애정하는 문학은 기술보다 감성의 영역에 자리한다.


다 읽고 곱씹어보면 작가의 치밀한 설계가 보인다. 소설 자체가 끝까지 감을 못 잡는 토니의 불완전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며, 곳곳에 역사관에 대한 얘기, 자살의 등급 등 단서들을 남겨둔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거부감을 사기도 한다.


거기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베로니카가 찢어보낸 아드리안의 일기장 한 장이다. 마지막에 "And finally, what Adrian was talking about on the page I’d been permitted to see. “Thus, how might you express an accumulation containing the integers b, a1, a2, s, v?” And then a couple of formulae expressing possible accumulations. It was obvious now. The first a was Adrian; and the other was me, Anthony—as he used to address me when he wanted to call me to seriousness. And b signified “baby.” 라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이게 영 멋이 없다. 이런 건 독자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해석하게끔 해야지, 이것을 왜 소설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설명하는가? 난 이런 독자 눈치 보는 과히 친절한 글을 싫어한다. 마치 과히 친절한 식당이나 러쉬 매장은 부담스러워 다시는 안 찾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작가의 카리스마는 자기 곤조로 이야기를 밀어붙이고, 독자가 따라오게 만드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였으면 accumulation에 대해 언급할 뿐, 등식 같은 건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말이다, 치밀하면 끝까지 치밀해야지, 뿌옇게 남겨놓은 부분이 많다. 사라는 왜 토니에게 일기장을 주라 했으며, 500 파운드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베로니카는 왜 이렇게 돌려 말하고 피해의식에 쩔어있는가 (아 물론, 베로니카가 처음부터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면 애초에 소설이 진행이 안 되었을거라는 이유는 있겠다)? 이에 대해 남들의 호의적인 평가를 찾아보니 "이 설명되지 않은 불확실함이 '기억'의 초라함과 untrustworthiness를 나타낸다"는 식으로 해석하던데, 이건 너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평가라고 본다. 뿌옇게 갈거면 확실히 뿌옇든가, 날카로울거면 확실히 날카롭든가. 이렇게 나와버리니 4B로 그린 극 사실주의 초상화에 수묵화의 획이 몇 번 덧칠 된 것 같은 부조화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글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여기서 하고, 이제 내용 얘기를 해보자.



이 소설은 책임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눠서 보자.


하나. 책임에 대해

I looked at the chain of responsibility. I saw my initial in there. I remembered that in my ugly letter I had urged Adrian to consult Veronica’s mother. I replayed the words that would forever haunt me. As would Adrian’s unfinished sentence. “So, for instance, if Tony . . .” I knew I couldn’t change, or mend, anything now.’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며, 또 오히려 그래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토니가 편지에 폭언을 쏟아내며 베로니카의 진상을 알려면 사라를 찾아가라 했고, 그래서 아드리안이 사라를 만나러 갔고, 그래서 둘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고, 그래서 아기가 태어났고, 그래서 아드리안이 롭슨의 그것과 같은 2등급 자살을 한 것이다. 이것이 과연 토니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애초에 아드리안과 베로니카가 만난 것 부터 틀려먹은 그림이며, 가정의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사라이다. 토니는 트리거일 뿐, 과연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가? 베로니카가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토니를 병신 취급하는데, 왜 베로니카는 토니를 그 딴 식으로 대우하며, 토니는 왜 또 거기에 순응하는지, 나는 소설 내내 열이 받을 뿐이었다.


동족혐오일지도 모르겠다. 토니에게서 내가 비춰진 것일지도. 너무 많은 것에 미안해하고, 내 잘못인 양 굴고, 그렇게 자기연민에 빠진 채 타인에게 착취 당하니 말이다. 어쩌면 좋은 리트머스지가 아니었나 싶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자기연민을 벗어던지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의 선을 좁힌 것이니. 덕분에 나의 변화를 체감했다. 이것만으로 값어치를 한 책이었던 것 같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주 공감이 간다. 지나간 과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작가는 없다고 하며, 나도 그 쪽에 가깝다. 죄책감을 갖는다고, 내 나름 뉘우친다고 해도,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주워담을 수 없다. 브레이킹배드에서 제시가 속죄모임에 나가서 서로 자기합리화 하는 이들에게 엿을 날리지 않던가. 인간이라고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얄궂은 우연 탓에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며, 우리는 이 앞에서 무력하다. 작가가 말하듯, 거기엔 그저 혼돈이 있을 뿐이다. 그저 안톤쉬거가 나를 찾아오지는 않기를 바라며 사는 수 밖에 없다.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문단을 하나 확인해본다.

‘But time … how time first grounds us and then confounds us. We thought we were being mature when we were only being safe. We imagined we were being responsible but were only being cowardly. What we called realism turned out to be a way of avoiding things rather than facing them. Time … give us enough time and our best-supported decisions will seem wobbly, our certainties whimsical.’

둘. 기억에 대해

지난 과거에 대해 계속해서 같은 거짓말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그게 정말 사실로 믿어질 때가 있다. 그 나쁜 짓을 딱 한 번 해봤는데, 곱씹어 볼수록 무서운 것 같다. 기억이란 과연 객관적인가. 아니 객관 주관을 따지기 전에, 시간이 흘러도 불변하는가? 잘 모르겠다. 사실 아직 살아본 시간이 충분히 길지는 않아서, 망각과 왜곡의 힘을 아직 충분히 체감하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생각해봄직한 구절이 몇 있어 여기 남겨본다.


‘History is the lies of the victors,” I replied, a little too quickly.

“Yes, I was rather afraid you’d say that. Well, as long as you remember that it is also the self-delusions of the defeated. Simpson?'

‘Colin was more prepared than me. “History is a raw onion sandwich, sir.”

“For what reason?”

“It just repeats, sir. It burps. We’ve seen it again and again this year. Same old story, same old oscillation between tyranny and rebellion, war and peace, prosperity and impoverishment.’


‘History is that certainty produced at the point where the imperfections of memory meet the inadequacies of documentation.’


‘Of course I’d been crass and naïve—we all are; but I knew not to exaggerate these characteristics, because that’s just a way of praising yourself for what you have become. I tried to be objective. The version of my relationship with Veronica, the one that I’d carried down the years, was the one I’d needed at the time. The young heart betrayed, the young body toyed with, the young social being condescended to. What had Old Joe Hunt answered when I knowingly claimed that history was the lies of the victors? “As long as you remember that it is also the self-delusions of the defeated.” Do we remember that enough when it comes to our private lives?’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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