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재정위기 2.0
- Minwu Kim
- 2022년 7월 23일
- 6분 분량
들어가기 앞서 간략한 시황 정리부터 하고 가자.
증시가 반등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달 사이 S&P500은 6%, 나스닥은 8%, 비트코인은 18%, 이더리움은 무려 55% 상승했다 (이 정도면 비트이더는 거의 유동성 지표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특히 어닝시즌을 맞이하며 대부분의 테크주들이 컨센서스에 비해 선방을 하며 과히 할인되었던 멀티플을 회복하는 중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협상이 타결되며 밀이나 옥수수의 선물 가격 역시 대폭 하락하는 중이다. 유가 역시 수요감소를 이유로 7월 들어 100달러 선 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미시건대 5년 기대인플레이션 지수가 피크아웃을 하며 물가가 꺾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듯 오랜만에 시장이 활기를 띄었다. 하지만 하락 때는 반응 요인을, 상승 때는 하락 요인을 보아야 한다. 현재의 반등이 인플레가 꺾이며 생기는 추세전환의 시작인지, 아니면 그저 하락장에서 한 번 꿈틀댄 dead cat bounce에 불과한지, 이를 판단하기 위해 시장의 악재를 살펴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악재는 여전히 잡히지 않은 물가이다. 6월 인플레이션이 9%를 넘으며 또 최고치를 갱신했고,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은 소득없이 망신만 당하며 끝이 났다.
하지만 오늘은 두번째 이유에 집중할 것이다. 바로 유로존 리스크이다.
1. EU의 간략한 상황정리
그제 드디어 ECB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11년 만의 인상이라고 한다. 50bps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며 기준금리는 -0.5%에서 제로금리로 인상되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있다. 미국이 현재 긴축을 하고 있다. 유로존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유로화 약세와 물가상승까지 심화시킬수도 있다. 문제는 유럽경제의 체력이다. 미국이야 그래도 고용시장이 탄탄하고,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그래서 긴축에도 버틸 여력이 있다. 하지만 유럽은 장기적으로 침체된 경기, 유로존 재정위기,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문제까지 삼중고로 겪고 있다. 그래서 긴축을 할 경우 경제가 심하게 흔들릴 수 있다.
금리를 내리자니 물가랑 환율이 오르고,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침체가 우려된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유로존이 이 상황까지 치닫게 된 이유를 역사를 통해 알아보자.
2. EU의 출범
1993년 11월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유럽연합이 출범했다. EU가 출범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 세계 2차대전 이후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
- 전범국 독일의 신뢰 회복
- 달러 패권 견제
- 냉전 후 대러시아 대응
EU 설립 후 회원국들 사이엔 같은 화폐를 쓰고,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게 되었다. 덕분에 경기는 활성화가 되었다. 영프독 같은 돈 많은 나라가 그리스 포르투갈 같은 돈 없는 나라에게 투자하고, 이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여 공동의 번영을 누리는 아름다운 청사진을 그리게 되었다.
3. 유로존 재정위기
청사진대로라면 모두가 성장의 열매를 공유하는 장밋빛 그림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통일된 화폐 때문이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 돈 잘 버는 독일이 있고 돈 못 버는 그리스가 있다. 어느 날 두 나라가 유로라는 같은 화폐를 쓰게 되었다. 그럼 유로의 가치는 비싼 마르크와 싼 드라크마 사이 어딘가에 있게 된다.
이러면 어떻게 될까? 독일의 관점에선 통화 약세가 온 것이다. 그럼 수출이 늘어난다. 반대로 그리스 관점에선 통화 강세가 온 것이다. 그럼 수출이 줄어든다. 잘 벌던 집은 더 잘 벌고, 못 벌던 집은 더 못 버는 것이다. 이걸 유로존 역내 양극화라고 한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돈 많은 나라가 이득을 얻는 구조이다. 그래서 그 댓가로 돈 많은 나라들은 PIGS (포르투갈,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같이 돈 없는 나라들에게 투자도 하고 대출도 많이 해줬다. 이 돈 없는 나라가 돈 많은 나라의 지원을 통해 성장하면 도움 받는 나라는 경제 성장을 해서 좋고, 돈 많은 나라는 투자금이 불어나서 좋다. 상부상조하는 너 좋고 나 좋고 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EU는 나름 잘 굴러가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08년 대서양 건너있는 부자 나라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다. 그리고 그 여파는 유럽 전역에도 뻗어나갔다. 당시 미국은 돈을 찍어 타개를 했다. 하지만 EU는 그러질 못했다. 이게 PIGS의 경제를 악화시켰다. 물론 EU도 양적완화를 하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독립적인 화폐정책이 불가했다는 것이다.
예시를 들어보자. 독일 프랑스 같은 부자나라는 돈을 조금만 찍어내도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PIGS 같이 좀 못 버는 나라는 돈을 많이 찍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모두 유로화를 쓴다. ECB 한 곳에서만 돈을 찍어낸다. 그렇다 보니 구조적으로 각 나라 상황에 맞는 통화정책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EU안에서는 싸움이 일어난다. PIGS 쪽에서는 자기들 죽을 것 같으니 돈 더 찍어달라고 하고, 독일 프랑스 같은 부자나라는 돈 더 찍다간 인플레이션 오니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양쪽은 딜을 본다. 화폐정책이 안 되니 재정정책으로 노선을 바꾼 것이다.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PIGS에게 돈을 빌려줄테니, 이 돈으로 회복하고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천천히 갚으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PIGS 국가들의 경제 회복을 못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문제다. 이탈리아는 베를루스코니가 나라를 말아먹은 것과 더불어, 산업구조조정에 실패하며 동아시아 한중일 3국과의 수출 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했다. 그리스 역시 정치인들이 부실기업을 끊임없이 국유화하는 등 표에 미쳐버린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를 파탄냈다.
이때 부터 EU 내에선 분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영프독 같은 채권자들은 PIGS 같은 채무자들에게 돈 갚으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채무자들은 "너네는 우리 덕에 화폐가치 떨어져서 돈 다 벌어놓고, 우리는 너네 때문에 화폐가치 올라서 돈을 못 버는데, 우리 보고 돈 갚으라는게 말이 되냐" 하며 맞불을 놓았다.
여기서 그리스 같이 돈 못 갚는 나라가 어째서 저렇게 배짱 두둑하게 나올 수 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가 어느날 돈 못 갚는다고 드러누웠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리스 경제는 파산이다. 하지만 이게 영프독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리스가 돈을 못 갚으니 빌려준 입장에선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채권자가 "어차피 그리스는 못 살릴 나라였어" 하며 손실을 감수한다고 해보자. 그럼 영프독 같은 부자나라에겐 버틸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그리스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것이 문제다. 골골대고 있는 이탈리아를 예시로 들어보자. 가뜩이나 경기 안 좋은데 그리스한테 돈까지 떼먹히면 이탈리아도 덩달아 골로 갈 수 있다. 이탈리아는 GDP 8위의 경제대국이다. 그리스가 망하는 것과는 체급이 다르다. 이탈리아가 무너진다면 영프독 같은 부자나라도 버티기 힘들게 될 것이다.
이렇듯 그리스는 EU의 아픈 손가락이다. 그리스가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EU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프독 같은 나라는 그리스 경제의 위기가 올 때 마다 그들을 도왔다.
여담으로, 메르켈이 채찍과 당근 사이 완급조절의 달인이었다. 메르켈은 "그리스 사람들은 게으르다" 라는 식의 외교적 결례에 가까운 발언을 하다가도, 그리스가 위험하면 돈을 더 빌려준다거나, 아니면 상환 만기를 늘려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리스를 쥐락펴락했다. 너무 몰아붙이면 그리스 경제가 무너져 빌린 돈이 떼이고, 너무 방종하면 빚을 갚질 않으니 절묘하게 그 사이에서 오고가며 속도조절을 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그리스인들이 메르켈을 워낙 싫어했다.
여담 하나 더 추가하자면, 그리스는 정치구조적으로 긴축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리스의 정치인과 국민들은 미래의 돈을 당겨쓴 포퓰리즘의 단맛에 중독되었다. 그렇다보니 긴축적인 스탠스를 가진 대통령이 당선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리스는 EU시스템의 피해자며, 영프독의 돈을 갗질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를 했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결집을 시키는 전형적인 정치 수법이다.
4. 부자나라의 불만, 그리고 터진 브렉시트
2016년 6월, 대국민 투표로 영국의 브렉시트가 확정이 되었다. 이후 여러가지 이슈로 질질 끌다가 2020년 1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EU를 나가게 되었다. 영국이 EU를 나간 이유로는 여러가지 있는데, 난민 문제 같은건 제쳐두고, 오늘은 유로존 재정위기 관련해서만 간략히 얘기하고자 한다.
앞서 설명했듯, EU의 부자나라는 화폐가치 하락 덕에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댓가로 고액의 분담금을 지불에 못 사는 나라들을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영국은 예외이다. 영국은 EU 회원국이었지만 유로화 대신 자국화폐인 파운드를 고수했다. 파운드를 고집한 이유는 영국의 자존심, 소로스의 영란은행 공격, 통화주권 침해 우려 등 여러가지가 있다. 아무튼 영국은 유로화를 쓰지 않았다.
영국이 유로화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영국이 독일과 프랑스 같은 부자나라들이 누린 환율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담금은 독일과 프랑스만큼 내고 있으니 반발감이 생긴 것이다. "독일 프랑스 너네들은 EU덕에 화폐가치 떨어졌으니 돈 더 내는 건 당연한건데, 왜 파운드 쓰는 우리 영국도 돈을 내야 하느냐" 라는 여론이 거세졌다. 여기에 당시 시끄러웠던 이슬람 테러조직과 난민문제가 트리거가 되며 영국은 결국 EU를 탈퇴하게 된 것이다.
4. 우크라이나 전쟁과 EU의 분열
영국과 달리 독일과 프랑스는 EU의 수호자였다. 자기들이 PIGS 먹여 살리는데 내는 비용에 비해 화폐가치 하락과 유럽 내 자유무역으로 얻는 이득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슨, EU가 유지되려면 독일과 프랑스가 쓰는 것보다 더 많이 번다는 전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너지고 있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해결되지 않았고, 코로나 때문에 경기 둔화가 있었고, 양적완화 때문에 물가가 올랐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며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독일만 해도 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60%에 달했다 (지금은 어찌저찌 줄여서 40%대로 내려왔다). 지금 기류 변화로 유럽에 들이닥친 전례 없는 폭염 탓에 에너지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겨울 가서는 난방을 이한 에너지 수요가 더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렇게 유럽의 경제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독일은 PIGS의 채무문제를 지지부진하게 끌 체력이 줄어든다. 정치적으로 돈을 받아내라는 여론이 늘어나면 최악의 경우 부자나라의 EU 탈퇴, 혹은 반대로 그리스 이탈리아의 모라토리움으로 인한 EU 탈퇴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 내에 그런 대규모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낮다. 하지만 현재 실제로 가시적인 불협화음이 보이고 있다.
6월 말, ECB의 라가르드 총재가 양적완화 종료를 발표한다. 그러자 이탈리아나 그리스 같은 취약국의 국채금리가 치솟았다. 독일 10년물은 1%대 초반에 머문 반면, 그리스 10년물은 3% 중후반까지 가버렸다. 채권금리가 오르는 것은 자금조달 비용의 상승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경기 안 좋은 나라가 대출 받기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걸 보고 화들짝 놀랜 라가르드가 1주일 후 긴급회의를 연다. 그리고 취약국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취약국 채권을 매입하여 국채금리 스프레드를 고정시킨다니, 아니면 OMT로 독일 프랑스가 보증을 서준다니 말이 나오고 있는데, 아무튼 핵심은 부자들 주머니에서 돈 꺼내서 불우이웃 돕자는 것이다.
그럼 독일 프랑스 같은 채권국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제 코가 석자인데 남들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쪽에선 허리띠 졸라매고, 다른 한 쪽에선 돈을 더 쓰면 그게 과연 긴축의 의미가 있느냐는 논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금리 인상은 기본적으로 통화 강세의 요인이 된다. 그 나라 통화를 가질 때 더 많은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성장을 훼손시키면 통화 약세가 일어난다. 금리는 찔끔 올렸는데, 성장은 이마안큼 줄어드니, 그 국가가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 스프레드와 더불어 유로화 약세의 대표적인 요인이다.
5. 결론
얘기는 다시 패권전쟁과 블록경제로 돌아간다. 세상이 서방세계와 공산권 국가로 쪼개지고 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률을 높이는 것은 약한 놈 부터 처리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어떻게 미국이랑 맞서 싸울지에 대해서만 얘기를 했는데, 그보다 취약한 고리인 유럽부터 공격하는 것이 그들 입장에선 확률이 더 높은 싸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금리인상이다. 지금 유럽과 전세계 이머징마켓들이 미국의 금리인상을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다. 핵심 미국이 다시 완화적으로 돌아설 마음이 있는지, 있다면 그 타이밍은 언제가 될지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유럽이나 일본이나 미국의 금리인하를 기다리며 질질 시간을 끌고 있는데, 이게 너무 길어지면 저들도 버터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돈 벌 타이밍을 재보도록 하자.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