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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구레

  • 3월 24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30일

아빠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저번주에는 둘에게 mbti 테스트를 시켜보았다. 아빠는 infj, 엄마는 esfp가 나왔다.


나는 아무래도 아빠를 많이 닮았다. 아빠를 묘사하자면 늘 다소 머쓱한 사람이랄까. 나중 가서 그나마 서울 물 좀 먹은 경상도 남자다. 아빠의 다정함은 그래서 조금은 덜 직관적이다. 그래도 나는 아빠보다는 더 말랑한 편이다. 그리고 그 말랑함은 엄마한테서 온 것 같다.


어릴적 내 영웅은 아빠였다. 물론 그건 지금도 그렇다. 다만 요즘은 엄마를 좀 더 닮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 엄마만큼 귀여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저께는 옆에 앉아서 엄마의 "나와의 채팅"을 보는데, 하루치의 성경통독을 숙제를 완료했다는 표시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기록을 해놓았더라:


"오바댜 1장 끝~ ✌️"


물결도 모자라 브이 이모티콘이라니, 자기 자신한테 보내는 챗이 저렇게 발랄할 일인가. 이렇게 스스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별안간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재잘재잘 참 잘 얘기한다. 꼭 참새 같다. 나는 옆에서 별 말 없이 마냥 듣기만 한다. 그럼 엄마는 몇십 분 동안 쉬지 않고 수다를 이어나간다. 그 시간들은 소중한 시간들이다.


어쩜 그렇게 혼자서 신나게 잘 얘기하나 신기하다. 그게 보편적인 아줌마들 특성인가 싶었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본인의 소소한 일상, 그 가장 자질구레한 부분까지 얘기를 해주고파 하는 것은, 엄마에게 있어 일종의 사랑표현이 아닐까 싶다.


더 자주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때 첫사랑이 끝나고, 이 속 쓰린 걸 저 많은 사람들이 다 해봤다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에 가서 오만 요상한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아는 그 형들도 다 이걸 버텨냈다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 쉬는 것이 때때로 어려울 만큼 마음의 감기가 심하게 걸렸을 때, 그 많은 환자들이 이걸 견뎌냈다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어려움들은 타인에 대해 보다 다른 이해를 갖게한다.


엄마는 나이를 먹으며 돌아가신 할머니의 마음을 뒤늦게 이해해가는 것 같았다.


이어령 선생님은 "현대 사회는 죽음을 죽였다"라고 했다. 가끔은 그런 먹먹한 이야기는 너무 무거워 피하고픈 마음마저도 드는 것 같다. 마치 <폭싹속았수다>를 두 번은 못 보는 것 처럼.



입에서 나오는 말들 마저도 예뻤던 그 친구는 허무맹랑한 if 놀이를 좋아했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 "남자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바퀴벌레가 되어 나타난다면?"

  • "여자친구가 남사친이랑 헬스하러 간다고 하면? 아님 여행을 가겠다고 하면?"

  • "여자친구가 비밀 연애를 하겠다고 하면?"

그런 상상에 진절머리를 치며, 그건 너무 싫다고, 얼마를 주더라도 지금 이대로 살겠다니 뭐니하며 우린 막 떠들어 댄다.

그런 식의 계산이라면, 지금의 삶에서 내가 그렇게 번 돈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런 거 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은 꽤 비싸고 가치있다는 의미일지도.

개꿀일지도오?



뭐든 나 스스로 해내려고 하는 독불장군 같은 면모가 있다.

무언가라도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그 전에 내가 충분히 직접 삽질을 해봤어야만 비로소 그 자격이 생긴다는 생각인 것 같다.


다만, 가끔은 타인만이 뚫어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건 바로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조금 더 상투적인 표현을 쓰면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이디어를 발표드리니 "이걸로는 부족해요. 지금처럼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는, research gap이 있다는 사실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이 갭이 중요한 갭인지를 설득부터 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이런 얘기를 지난 1년 반 동안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우리 교수님께는 감사함 뿐이다만, 시야의 확장을 위해선 이제 슬슬 거처를 옮길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단 받아주셔야 될 얘기이지만.


똥줄이 타지만 지금까지 컷 안 당한게 어딘가. 감사하자. 마지막까지 잘 해보자.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 괴로워 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마음이 조금 바뀐 것 같다.


사람 하는 일은 다 하면 는다. 해 버릇 해야 잘하는거다.


토요일은 동네 친구들이랑 논다. 4시 즈음에 모여서 헬스를 하고, 그 다음 밥을 먹고, 그 다음 8시부터 10시까지 볼을 차고, 12시까지 뒤풀이 하고 집에 간다.


저번에 중국 와서도 느끼는 것인데, 동네 친구들이 여전히 모여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친구들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인간은 도시에서 살면 안 되는 존재라고. 그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마을에서 두루두루 모여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이 동네는 좀 그런 느낌이 든다. 따뜻한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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