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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19년 6월 13일
  • 1분 분량

처음으로 쓸쓸함을 마주했던 기억이다. 초등학교 때였나. 셋째 큰 아빠 집의 작은 방 바닥에서 아빠와 나란히 누워있었다.


내 바닥 내 동네를 떠나 이방인이 된다는 건 사람을 작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다. 지금도 여행지에서 길을 찾을 때는 그 새로운 공간에 대한 내 무지가 시간의 흐름을 더디게 한다. 매초매초를 평소보다는 좀 더 예민해진 감각으로 체험하는 기분 말이다.


그 때는 나 자신보단 아니라 아빠가 작아서 쓸쓸했다. 아니 무서웠다 (쓸쓸했다고 느낀 건 이곳 저곳 은근하게 슬픈 맛이 베어있는 세상을 어느정도 받아들인 후였던 것 같다. 어린 나의 감정은 두려움에 가까웠지 싶다). 그 때 어두운 천장을 보며 아빠의 손을 잡고 “아빠가 죽으면 어떡하지”하고 울먹였다. 그게 그 때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만약 그 때가 할머니의 장례식 직후였다면 난 아마 큰 불효를 범했던 것이다. 침묵에 결벽이라도 있는 듯 생각나는 대로 뱉는 어린아이의 습관이었다. 기억나진 않지만 아빠는 아마 대수롭지 않은 듯 모른척하며 어린 아들을 달랬을 것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어렸던 내게 아빠는 완전하고 영원할 것만 같은 존재였다. 그 날 아빠의 불완전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누구나 혼자 죽는다는 사실을 정면에서 마주한 것이었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낯선 방의 모습이 준 불편함도 곧바로 창 밖에서로부터의 햇빛이 녹여버렸을 것이다. 빛은 어떤 것을 보이게 하지만, 그 외 비춰지지 않은 것들을 숨기기도 한다. 그래서 전날밤의 일을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벌어진 일인 것 마냥 모른채하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 도피는 지금도 반복된다. 바쁜 날들에 치여 살며 눈 앞에 일들에 정신이 팔리고 매순간 초침을 돌리는 존재를 애써 외면한다. 하지만 모든 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 어둠 속에서 다시 쓸쓸함이 찾아온다. 이대로라면 죽을 때 까지 도피는 끝나지 않는 것 아닐까. 이래서 사람들이 교회로, 절로, 성당으로 몸을 숨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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