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
- Minwu Kim
- 2024년 3월 5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5월 9일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온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 결국 우리가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지 않기를.
그리고 나도 저 말에 한 줄 더 붙이고 싶다: "그리고 서로의 지난 과오들도 친절함으로 품어낼 수 있기를".
결국 행동으로 옮겼다. 이게 맞는 행동인가 수십번을 고민했다. 겨우겨우 아문 일 다시 건드렸다가 또 피가 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내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건가. 내가 이에 대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아마 병신호구새끼 소리 듣기 딱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용기 내보기로 했다. 나 역시 청산하고픈 카르마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한 내 마음이 다시 풍요로워지길 바랬으니까.
지금 보니 잘 한 것 같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고통이다. 그에 반해 타인에게 전한 뭉근한 온기는 나 자신에게도 남아 내 마음을 데운다. 딱 적당히 식었다던 그 얼그레이티처럼 말이다.
사실 아직도 밉다. 때때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아니, 미움은 좀 애틋한 느낌이 있다. 그것보단 증오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길을 나 혼자서 수백번 찍고 왔고, 그 끝에는 항상 고통 밖에 없다는 걸 이제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 답습하고 싶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내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친절함을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떳떳하다. 내 그릇으로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을 품기 위해 결국 내 그릇을 확장하기로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소진했다. 미련하리만치 할 만큼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상처는 타인에게 전가되지 않을 것이다. 옳은 길을 걸어냈고, 타협하지 않았다. 내 나름 정말 치열한 과정이었다. 오늘은 나 자신을 칭찬해줘도 좋을 것 같다.
친절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말을 믿는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는다. 다시 한 번 그 믿음에 기댔고,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그 믿음은 배신하지 않았다. 새해의 염원을 그대로 실천했다. 원만하게 매듭지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할 뿐이다.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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