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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24년 6월 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월 4일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똥인지 된장인지 안 찍어먹고도 알기는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은 딱 본인이 경험한 만큼만 헤아릴 수 있는 것일까. 좀 싸게싸게 가는 방법은 없나 싶다.


가자지구의 난리통 보다 훈련병의 죽음에 백 배는 더 분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논산의 막사가 막 리모델링 되었고, 우리 기수가 처음으로 입주했다. 중대장이 분명 히터를 틀었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개뻥 같다. 12월의 엄동설한에 흡사 길바닥에 나앉아 노숙하는 줄 알았다. 내복에 양말에 생활복에 전투복까지 입고 침낭으로 몸을 욱여넣어 겨우겨우 버텼다.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니었지만 (야전 취침도 하는데 뭐) 그 때 난 오들오들 떨며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섬찟한 감각을 떠올리면 지금도 좀 오싹해진다. 그래서 그 훈련병의 서늘한 죽음에 이입하여 분기탱천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쟁통에 들어간 기억은 없다. 나라 잃을 위기에 처해, 눈 앞에 포탄이 떨어지고, 가족들이 실종 되고, 식수는 올지 안 올지 몰라 매일매일 전전긍긍하는, 그런 그림은 되려 너무 초현실적이라 와닿지가 않는다. 내 한 줌의 상상력을 동원해 최대한 이입을 하려 하지만,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거기에 부여되는 감정도 딱 그 정도에서 머무는 것이다. 고로 이 문제를 대할 때는 훨씬 인정머리 없는 이성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또 그 놈의 영국이 문제구나, 일단 국력은 강하고 봐야하는구나, 하는 그런 류의 생각 말이다.


최근에 술자리가 있었는데, 그 중 친구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영화 한 편 볼 때 거기에 온전히 몰입해서 감정소모가 심하다고 했다. 전에는 그런 성향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사에 그렇게 감정적인 동요가 심하면 아무래도 좀 피곤하니까. 하지만 다시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큰 재능이지 아닐까 싶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 타인의 경험을 체화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작은 비용으로 세상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연약한 상상력을 어떻게 키워나가는 것이 가장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인도에서 쓴 일기에서 얘기했지만, 인식의 확장이 더 쉬워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평화롭고 사랑이 넘칠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글의 일반적인 순서 상으론 가능한 방법론을 제시할 차례인데, 오늘은 그런 게 없다. 도통 모르겠다. 상상력도 재능의 영역인가, 키워낼 수 있는건가. 아님 상상력 없이도 다른 방법으로 타인을 헤아릴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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