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산책
- Minwu Kim
- 4월 3일
- 1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8일
각자의 팔짱을 낀채 걷는다. 그 적당히 느슨한 거리감이 나는 좋다.
관계가 깊어지면 서로의 속얘기를 꺼내는 순간이 찾아온다.
비밀을 공유하는 연대감은 관계를 더더욱 돈독하게 한다.
하지만 그 연대감의 순수성을 따지자면, 거기엔 많은 의문이 남는다.
비밀을 공유함으로 얻는 기쁨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건 "내가 이 사람에게 그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었구나" 하는 자기 만족일 뿐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건 과연 사랑일까. 그냥 자기 투사 아닐까.
아니, 사랑이 애초에 투사의 낭만화 아닐까. 에리히 프롬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500일의 썸머>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썸머가 톰에게 침대에서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톰은 썸머와 그렇게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스멀스멀 피어오는 유아(有我)적인 기쁨의 냄새를 나는 분명히 맡았다. 그게 부끄러웠다. 나는 그 이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아니, 그게 도대체 뭔지도 잘 모르겠다. 과연 온전한 무아(无我)지경은 가능한 걸까.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욕구야 말로 진정 상대가 나와 온전히 합일하길 바라는, 한 층 더 깊은 투사가 아닌가 싶다. 몸으론 각자의 팔짱만 낄 뿐이어도 마음은 아주 넝쿨마냥 서로 얽히고 설키길 바라는 걸지도. 과유불급으로 일을 그르치게 된다면, 아마 많이 씁쓸하겠지.
다 뱉어놓고 하는 이러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 그만해야겠다.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는가. 그만 복잡해지자.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