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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24년 2월 2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6월 19일

자의식이 너무 강해 나의 삶에 누구보다도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생각, 내 삶은 눈이 부시게 빛날 것이고, 장엄하고 거대할 것이라는 환상, 그리고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결국엔 이겨내고 승리할 것이라는 서사를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한창 투자에 진심일 때 매일마다 뉴스를 뒤적이곤 했다. 그리고 뉴스 속의 거대한 일들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한국의 고령화 저출산 탓에 붕괴되는 인구구조에 대한 걱정, 미국의 부채위기가 터져 달러패권이 무너질 여파에 대한 걱정, 이스라엘, 예멘, 우크라이나, 대만, 한반도 같이 화약고처럼 타오르는 정세와 3차 대전에 대한 걱정, 지구온난화에 대한 걱정,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를 망가뜨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이런 내가 손 쓸 수 없는 거대한 것들을 생각하며 잠 못 이뤘었다. 친구가 그걸 듣고 "그런 걸 왜 걱정하냐. 너 하나가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닌데" 하고 나무랐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내가 그걸 바꿔낼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큰 일들이 나와 밀접한 일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그런 사명감에 괴로워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정말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나보다. 그만큼 나의 자의식은 너무나도 강했다.


예시를 하나 더 들자면, 도덕적인 잣대도 그렇다. 사람과 마찰이 생기면 "품어내야지, 이겨내야지, 괜찮은 척 해야지", 남한테 피해를 입어도 "그럴 수 있지, 받아내야지,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되지".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했던 것 같다. 뭐,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마음 밑에 기저한 건 "나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나르시시즘이 아니었을까. 그건 도덕이 아니라 자아도취였다. 정작 그렇게 대단히 도덕적으로 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겉으로는 나 자신을 "평범한", "부족한", "멍청한", "나부랭이" 등으로 겸손한 척 수식하지만, 그건 어쩌면 내 거대한 자의식을 감추고파 쓴 가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작년에 내 나름 바닥이라면 바닥을 찍은 것 같다. 되는 것 하나 없고 마음 속엔 자기혐오만 가득했으니까. 서러움도 서러움이었지만, 그 때의 감정은 공포심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구나. 이 세상은 나의 고통에 관심이 없구나.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구나.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잘만 돌아가겠구나." 그러니 마음이 되려 편해졌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했는데, 내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겠구나"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건 꼭 필요한 과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신 같은게 있다면 친히 자의식을 깨부숴주시는 은총을 내려주신걸지도 모르겠다. 그 개떡 같던 시간에 내가 은총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니, 참 새옹지마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내 힘은 너무나도 작고,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당장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삶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주어진 그 때 그 때에 감사하며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서 성공한다거나 하는 그런 영웅적인 서사는 좀 허황된 것이지 않을까. 그저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 그만인 것을. 그리고 따뜻함을 주위에게 전해주면 그만인 것을. 역설적으로 그런 가벼운 마음가짐이 더 충만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끈기와 독기도 중요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보내는 것도 나름의 미덕이지 않나 싶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려고 덤벼들면 탈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걸 감당하지 않는 것은 꼭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것, 그걸 불교에선 무아(無我)라고 한다. 어떤 깨달음은 그 삶을 직접 오롯이 살아내야만 그제서야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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