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 Minwu Kim
- 2023년 11월 2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2일
여전히 안 좋다. 많이 나아진 것 같긴한데, 여전히 이따금씩 불안, 분노, 후회, 죄책감 등등의 감정들이 안에서 휘몰아친다. 그제는 숨이 안 쉬어져서 10분 동안 쪼그린 채로 아무것도 못했는데, 갈 데 까지 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악물고 버틴다. 매일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지친다.
이 바닥을 기는 시간이 언제 끝날까 괴롭다가도, 꽤 소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승리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본다.
김창옥 강사님의 강연을 좋아한다. 근 몇 년간 벅찬 순간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 때 마다 그 분의 강연들을 찾아본 것 같다. 그 분의 말을 가만히 듣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 김창옥 강사님이 강연을 접으신다고 한다. 치매 때문이라고 한다. 뉴스를 찾아보니 심각한 수준이다. 이제 갓 지천명이시던데, 천명이 어째서 이따구인지 모르겠다. 얄궂다. 한 번도 만나뵌 적 없지만 마음이 안 좋다. 그 분의 마음은 누가 보듬어줄까 걱정이 된다. 아프지 않으셨음 좋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 것은 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어보았어야 가능한 것이다. 당장 김창옥님도 그렇다. 겉으로는 외모도 언변도 수려한지라 어디 하나 부족한 구석이 안 보인다. 하지만 그 분도 상처가 많은 분이다. 아픈 가정사가 있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그 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아픔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을 할 수 있겠나.
뭐, 사실 그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힘들 때 마다 친구들을 제쳐두고 서른 줄의 형 누나들을 찾아간 것도 그 이유이다. 물론 나이와 깊이는 꼭 정비례하지 않지만, 나이 먹은 만큼 겪을 것 다 겪어보았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 역시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만 안다는데, 내가 위로를 건네는 입장이 되니 그제서야 조금 깨닫는다.
한 2주 전에, 아는 동생이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내게 고민들을 토로했다. 나도 지금 제 코가 석자인데, 남을 위로하다니, 가당키나 한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 괜히 더 평소에는 낯 간지러워 꺼내지 않던 따뜻한 위로를 건네었다. 힘들어 하는 내 모습이 겹쳐보여서, 그게 괜스레 안쓰러워서, 그래서 마음이 더 간 것 같다. 그 친구에게 그 말들을 건넨 것은 어쩌면 다 나 자신에게 하고픈 격려의 말, 아니면 내가 남들에게서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이지 않았을까.
그걸 깨닫고 나니 나를 유독 따뜻하게 보듬어줬던 사람들이 몇몇 떠올랐다. 그 사람들도 다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거니 싶었다. 그 사람들이 건넨 위로 뒤에는 그 사람들이 직접 아파하며 지불한 값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내게 투영해 연민을 느꼈을 것이고. 그걸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부채의식도 생기고 그렇다. 위로 받을 때 감사인사만 하는 것 대신, 나도 같이 위로를 해줄 걸 그랬다 싶다. 하지만 그 생각이 들다가도, 나는 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으니, 내가 줄 수 있는 위로는 크지 않은 것 같아서 좀 무력하기도 하다. 어디서 딸이 엄마에게 "나는 다음 생에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어"라고 한 걸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마음이지 않을까.
훈련소에서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읽었었다.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그리고 아파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사적인 이해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지금의 시간들이 내가 받은 위로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 아닐까, 내가 헤아릴 수 있는 마음도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럼 나를 품어준 이들을 내가 품어줄 아량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시간들도 추후 자양분이 되는 꽤 애틋하고 소중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 못하면 너무 괴로우니까 이렇게나마 정신승리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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