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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23년 12월 2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5월 9일

염미정이 구씨한테 하는 대사 중에서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은 나의 성역이었어”. 그거 참 녹진한 사랑고백이다. 박해영 작가님은 뭘 먹길래 이런 글을 써내는지 모르겠다.


성역, 풀어서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가족이 있겠다. 우리 가족보다 잘난 사람들 이 세상에 널린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굴 가져다 놓아도 나는 우리 아빠 우리 엄마 우리 누나가 최고다. 이번 생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여기고 살기로 정한 것이다.


언제 한 번 이런 연구를 본 적이 있다. 한 집단에겐 세 문제 중 하나를 골라 풀게 하고, 다른 한 집단에겐 오직 한 문제만 출제하는 식이었다. 선택지를 제한한 후자의 성적이 더 높았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선택이 많은 것이 마냥 축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 조금만 안 되면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선택에 의심을 하게 한다. 그것이 온전한 몰입을 방해한다. 소셜미디어가 행복도를 갉아먹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보이는 떡이 너무 많으니 자신의 떡에 안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배부른 소리지만, 가끔은 선택지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르트르나 하이데거가 얘기하는 피투적 존재의 개념, 혹은 자유는 형벌이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누가 내 할 일을 딱 정해주면 속 편할 것 같다. 향후 최소 15년은 예정된게 싫어 고사한 의대도 지금 보니 어쩌면 내 성향과 잘 맞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성을 만나는 것도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는 것 보다 조선시대 마냥 “아무개 군과 아무개 양은 백년가약을 맺으시오” 정해놓고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끝까지 충성하는게 오히려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난 통일교 신자나 해야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때 코피 터져가며 공부만 했던게 제일 속 편했다. 눈에 오로지 하나 밖에 안 보였으니까. 뭐 할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일할지도 모르겠고, 이 불확실성이 사람을 흔들리게 하는 것 같다.


모르겠다. 안 되는 일을 계속 붙잡고 있는 짓은 미련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놓아버리기엔 내가 끈기 없이 너무 쉽게 내려놓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오늘도 목 끝까지 올라온 때려치겠다는 말을 삼켜냈다. 진리는 늘상 그렇듯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해 있을 텐데, 고집과 아집을 구분짓는 기준을 도통 모르겠다.


그럴수록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저질러 놓고 생각하자”는 접근은 나한테 맞지 않는 옷 같다. 나 자신이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다면 나는 금세 한 눈을 팔고 말 것이니까.


아닌가. 선택에 너무 무게를 준 결과가 겨우 이거라면, 선택은 애초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선택을 신중히 해서 그나마 이 꼬라지인건가. 잘 모르겠다.


아니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파훼법은 보다 거시적인 소명의식을 갖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삶 전체를 관통하는 가치 말이다. 어디 좋은데 취직하겠다, 대충 잘 먹고 잘 살겠다, 이런 근시안적인 것 너머의 무언가가 없다면 끊임없이 표리부동하며 시달리지 않을까 싶다. 아, 그걸 두고 성역, 혹은 가치관이라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결국 명확한 가치관이 없는게 문제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크고 답 없는 질문.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나. 아니, 꼭 싸워야 하나.


반년 동안 깡통만 찬 연구를 생각하다 빡쳐서 글을 적다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래서 그만 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논문 좀 써보겠다는데, 그게 씨 뭐 얼마나 큰 욕심이라고, 하여튼 더럽게 안 풀린다.


딱 1주일만 꾹 참고 더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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