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 Minwu Kim
- 2024년 4월 26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12월 14일
오늘 논문을 제출했다. "나도 논문 같은 거 하나 내봤다"는 소박한 한 마디를 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생각보다 훨씬 고생을 했다. 이럴 줄 몰랐는데, 제출하고 나서 한 10분 간은 벅찬 마음에 가슴이 쿵쿵댔다.
많이 외로웠다. 호기롭게 내 주제를 들고 가서 직접 연구를 해보겠다고 들이댔다. 그리고 지원을 거의 못 받다시피 했다. 교수님들은 1주일에 30분 동안 미팅해서 만나는 것이 전부였고, 나중 가선 그것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2학기 가선 교수님이 아예 포닥한테 짬을 때려버렸다. 그리고 포닥 분도 아쉽게도 그렇게 큰 도움을 주진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따지기도 거시기했다. 내 연구는 내가 하는 것이 맞으니까. 학부생이 주도하는 연구를 열심히 지원해주는 교수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혼자서 너무 많은 삽질을 했다. 그 짧은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왔다.
주위에 보면 교수님 연구에 붙어서 좋은 가이던스를 받고 빠르게 논문을 투고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나도 그렇게 할 걸" 하면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 친구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일을 시키면 어거지로라도 꾸역꾸역 해내는 것은 나도 되게 잘한다. 하지만 아무도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니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의지할만한 팀메이트도 없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프로젝트는 그대로 멈췄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냥 저널이고 나발이고 적당히 랩업하고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퀄리티는 조악하지만, 저 논문은 누가 뭐래도 내꺼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가 페달을 밟은거다. 주제를 찾고, 데이터를 모으고, 이리저리 뽈래뽈래 자문을 구하고, 방법론을 뒤져보고, 어느 하나 남들이 시켜서 한 것이 없다. 내 힘으로 이걸 해냈다는 것 자체가 큰 프라이드로 다가오는 것 같다. 무에서 유를 만든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 "유"가 대단한 "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앞으로 좋은 자양분이 될 만한 경험이었다.

교수님한테 투고를 한다고 하니 위와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도움은 많이 못 받았지만 인정은 받았다. 축하는 감사하긴 한데, 저 분이 원래 말로는 평가가 후한 분이라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하지만 자기 이름 올리라고 한 것은 진또배기의 긍정이다. 교수님은 publication 엄청 따지는 분이고, 특히 이 교수님은 곤조가 있어서 탑저널 아니면 안 내고 만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투고한 곳은 sci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mediocre한 저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름 올리라고 하는 것은 교수님의 하나의 인증마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원 하나 제대로 안 해주고 이름 올리라는 건 또 마음에 안 들긴 하는데, 교수님 이름 박히는 것이 나한테도 이득인지라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Accept가 될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내가 보기엔 연구의 퀄리티가 한 없이 조악하다. 당장만 봐도 보이는 구멍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원래 완벽한 연구는 없다더라. 물론 그 교수님의 스탠다드와 내 스탠다드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게 위로가 되었다. 아마 그런 연구 많을거다. 오늘만큼은 자기검열 덜하고 나 자신을 잘했다고 우쭈쭈해주고 싶다. 의도적으로라도 말이다. 정반합의 과정이라고 본다.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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