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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23년 12월 8일
  • 3분 분량

그저께 쓴 글을 다시 읽어봤다. "노력 포르노는 그만 찍어야겠다. 나도 정신건강 챙기면서 즐길 줄도 알아야겠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어째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랄까, 마음 챙김이 필요하다는 요지는 좋지만, 한 편으로는 노력 안 하겠다는 자기합리화 같달까. 노력 포르노라는 표현도 지금보니 좀 촌스러운 것 같다.


사실 내 진짜 속마음은 "노력하기 싫다"보다는 "기꺼이 노력하고 싶던 그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이다. 한 가지에 심취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니까. 나는 패기 넘치고 독기 어렸던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지금은 전과 달리 그게 잘 안 된다. 어떻게 하면 다시 전투력 만땅이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노력의 본질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노력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일이다.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것은 명문대 입학이라는 미래가치를 위해 현재에 즐길 수 있는 쾌락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 친구가 신림 가서 고시 준비를 하는 이유는 외교관으로 임용된다는 미래가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 누나가 요즘 열심히 운동하는 것도 건강한 몸이라는 미래가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노력이란 본디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에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노력하는 사람이 칭송을 받는다. 하지만 노력이 언제나 합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보자. 일부 금수저들이 노력을 안 하고 흥청망청 지내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현재를 포기하지 않아도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데, 왜 노력을 해야 하나. 수시 합격한 친구들이 공부를 안 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미 대학 들어가는 게 확정이 되었는데, 안 놀면 바보다.


그럼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까. 대충 두가지 요소가 있는 것 같다.  


- 첫째는 미래가치이다. 미래에 내가 얻게 되는 효용이 충분히 커야만 노력은 합리성을 갖게 된다. 죽어라 노력해서 최저시급 밖에 못 받는다면 그걸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죽어라 공부해서 의사가 될 수 있다면 그걸 할 사람은 충분히 있다. 아니, 요즘 보면 차고 넘친다는 게 더 옳은 표현 같다. 반대로 노력을 안 할시에 얼마나 큰일 날지도 미래가치라고 볼 수 있다. 적당히 노력해도 별일 없을 것 같으면 굳이 노력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오늘 당장 일하지 않으면 내가 굶어 죽는다고 한다면 당장 침대에서 등 떼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둘째는 가능성이다. 아무리 미래가치가 커도 그게 실현가능성이 너무 작으면 사람은 쉽게 포기하게 된다. 죽어라 노력해서 머스크나 베조스 같은 부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기막힌 우연들과 기질들의 중첩인지라, 그 가능성은 아득하게 작아서 대다수 사람이 시도도 하기 전에 포기를 하게 만든다. 반대로 뭐든 가닥이 보이면 그건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고로, 노력이 정당성을 갖게 되려면 1. 미래가치가 높아야 하고, 2. 성공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이런 프레임워크를 통해 내가 무엇을 해야 기꺼이 노력을 하게 될지 실마리를 찾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미래가치를 높이려면 꿈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최대한으로 부풀려야 한다. 내가 기꺼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퀀트라는 목표에 기대가 아주 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향성이 사라졌으니 노력이 전만큼 쉽게 되지 않는 것이다. 김승호 회장이 본인이 아무것도 아닐 때 부터 매일마다 자신이 성공했을 때의 모습을 다분히 구체적으로 상상했었다는데, 미래가치와 꽤나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정말 케케묵은 말이지만, "내가 진정으로 몰입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이 있을까"를 초심자의 마음으로 이제서라도 고민해 봐야겠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내가 노력을 안 할 경우 얼마나 바닥까지 갈 수 있는지를 깨닫는 것인데, 오만한 생각이지만 아직 그건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껏 해둔 게 있는데, 아주 망하지는 않겠지 싶다. 그래서 이건 일단 배제한다.


- 가능성을 높이려면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지근 당장 떠오르는 건 하나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누적한다는 얘기는 뺀다). 주위에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두어야 한다. 여기서 가능성이란 객관적인 가능성보다는 심리적인 가능성에 더 가깝다. 주위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으면 "쟤도 했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도 이걸 몇 번 경험해 봤다. 미리 캐나다로 날아간 누나가 없었음 5학년 때 혼자 호주로 날아가는 건 꿈도 못 꿨을 것이고, 나보다 학업 성적 낮은 친구들이 옥스브리지를 붙는 걸 못 봤으면 해외대학 지원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주위에 스타트업으로 성과를 내는 분 하나를 보고서야 "이게 되긴 되는구나" 하고 회의적이었던 생각이 많이 바뀌기도 했다. 지금 보니 내가 그게 부족한 것 같다. 학교에는 다 나 같이 헤매는 중생들 뿐이다. 도서관에만 짱 박혀 있을게 아니라 더더욱 적극적으로 바깥사람들을 만나고 다녀야겠다. 성공의 확률에 대한 심리적 기댓값이 높아질 때까지 말이다. 괜히 환경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물론 그런 환경적 요인 없이도 단단한 자기확신을 갖고 보란 듯 성공해내는 몇몇 개천용이 있긴 한데, 그건 확률적으로 승산이 너무 낮은 게임이다. 용은 개천보다 큰 물에서 훨씬 많이 나온다.


좀 뻔한 결말로 이야기가 흘러간 것 같은데, 결국 결론은 내가 진정 좇고자 하는 방향성이 어떻게 되는지 충분히 고민하고, 이미 세상에서 자기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는 것 정도가 될 것 같다.


가슴에 불꽃을 품은 정열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뭔지는 몰라도 일단 고"가 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에너지 레벨이 낮은 사람이라, 나 자신이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으면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시간을 충분히 들여 나 자신을 설득해야겠다. 그게 되면 나도 그 분들 못지 않게 불꽃남자 할 수 있다.


이런 생각하니까 더더욱 이 갑갑한 학교를 떠나고 싶다. 도망쳐 간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이제 학교 밖에서 사람들과 호흡하며 살아보고 싶다. 너무 오래 있었다. 이제 진짜 갈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막상 졸업하면 지금을 그리워할게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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