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 Minwu Kim
- 2024년 11월 4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월 19일
어쩌다보니 한 달 넘게 일기를 안 썼다. 사람이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생각은 그 총량이 존재하는 것 같다. 연구와 박사 지원에 하루의 할당량을 전부 소진해버리니 글을 쓸 여력이 없다.
11월, 어느덧 또 겨울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던가. 4호선이었던 것 같다. 한 시간은 늦을 거라던 그 친구를 기다리며 지하철의 중고서점에 들어가 한강의 시집을 읽었더랬다. 정확하진 않지만 "하나의 순간이 영원히 지나가고 있다"라는 식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의 시린 코, 입기엔 좀 덥지만 벗기엔 또 들고 있기는 불편해 그냥 지퍼만 열어뒀던 패딩, 뭐 그런게 생각이 난다. 그 순간에는 나도 한 번 시를 따라서 오롯이 시간의 흐름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냥 이번에 한강 작가님이 상 탔다길래, 또 벌써 겨울이라길래, 그 때 그 생각이 났다. 2024년이라는 시간도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싶다. (아, 근데 한강 책은 내 취향 아니다. 채식주의자는 특히 아니다.)
하루하루를 온전히 마주하며 살고는 싶지만, 지금은 마음에 영 여유가 없다. 박사 지원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또 한 달 더 지원 준비를 하고, 또 지금 본격적으로 시작은 연구를 연말까지 preprint를 완성하면 올해는 지나갈 것 같다.
회고를 하기엔 다소 이르지만, 올해의 목표를 잘 실천하고 있나 재점검을 해본다. 염세주의를 벗어날 것, 본능을 받아들이고 솔직해질 것, 보다 어진 마음을 품어볼 것, 그리고 현재할 것. 돌이켜보았을 때, 매순간 이 생각에 기반한 행동들을 하려고 나름 부단히 노력한 것 같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기엔 좀 거창한 감이 있고, 내가 나 스스로를 착취하지 않고, 또 나를 착취하려는 타인에게부터 흔들리지 않게 하는 마음의 근육을 조금은 길렀다고는 볼 수 있을 것 같긴하다.
이제는 더 나아가, 사람에게 마음 놓고 다시 기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좀 들뜨기도 하고, 낭만 어린 착각에 빠지고 싶기도 하다. 모르고 덤비는 건 순진함이고 알고도 덤비는 건 순수함 아닐까.
연거푸 가시에 찔린...은 너무 자기연민에 찌든 표현이고, 연거푸 재수 없이 똥을 밟았는지라, 그 방어기제를 완전히 이겨내지는 못했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이고, 나쁘게 말한 치사한거다. 잔대가리 굴리는 대신 굵직한 마음을 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다시 부쩍 든다. 백만 송이 장미까진 아니어도 백송이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가보다. 이제 그 개떡 같은 몇몇 기억들을 다시 불러오는데 몇 초씩 로딩시간이 걸린다. 물론 아직도 곱씹을수록 아주 죽여놓고 싶은 건 여전하다만. 이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만큼은 아니어도, 대체로 좀 불행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 그릇이 이 정도인가 보다. 그래도 뭐, 아무렴 괜찮다.
아무튼, 요즘은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것 같다. 딱히 드라마틱하게 좋을 일은 없다만, 그렇다고 나를 특별하게 괴롭게 하는 것도 없다. 그 정도면 충분히 좋은 거 아니겠는가.
교수님도 좋고, 같이 연구하는 친구도 마음에 든다.
엄마랑 아주 괜찮은 딜을 본 것 같다. 엄마는 운동을 하고, 나는 교회 가서 멍을 때리고 온다. 주님 믿으라는 말은 여전히 와닿지 않지만, 착하게 살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교회는 괜찮은 곳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운동메이트도 워낙 싹싹하다. 더 챙겨주고 싶고 그렇다.
현석이 요리는 계속 느는 것 같다.
히로카나 헤이스케의 책은 심심하지만 읽을 만 하고, 타일러의 새앨범은 후반으로 갈수록 극락이다.
잘 자고, 잘 먹고, 숨도 잘 쉰다.
참, 쓰다보니 행복하다는 생각, 아니 느낌이 든다. 누나만 마음 고생 좀 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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