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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다 지나가고 나는 그 간의 파편들을 하나 둘 모아모아.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8월 22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9월 8일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고 나서 일주일 동안 새로운 루틴을 시도해 보았다. 전날 밤 휴대폰은 화장실 문 앞에 두고 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알람을 끄고 곧장 침구를 정리한다. 거실로 나가 차를 끓인 뒤, 요가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하고 푸시업 50개를 한다. 이어서 빠른 샤워로 몸을 깨우고, 양치와 세안을 마친 후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선다. 이 모든 과정에서 속으로 만트라를 되뇌인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네 세트의 포모도로를 돌린다. 이 모든 과정에서 휴대폰은 금지다. 한 시간 정도는 점심을 먹고 여유를 가지며 쉰다. 이후 두세트 정도 더 집중한 뒤 운동을 가고, 저녁을 먹는다. 저녁에는 잠시 빈둥거리다 다시 일을 이어간다.


진우가 오기 전까지는 이런 생활을 꾸준히 이어갔다. 하루의 시작이 좋으면 그 기운을 이어가기 아까워서라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진우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금, 다시 이 루틴을 잡아보려 한다.



내가 많이 아끼는 진우가 왔다. 진우에게는 늘 마음의 빚이 있다. 세 달 동안 월세도 받지 않고,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었던 고마운 동생이다. 사실 동생이지만 형 같다. 걔도 말로는 형형하지만 날 거의 동생 취급하는 것 같기도. 난 그게 전혀 싫지 않다.


5일 동안 알차게 놀았다.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몇 번 찐빠를 냈지만, 진우는 속이 깊어 티내지 않고 오히려 즐겁게 따라줬다. 덕분에 별다른 마찰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고, 나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다. 아주 좋은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중국이든 미국이든, 또 다시 초대하고 싶다.



아직 결혼도 요원한 이야기이지만, 종종 애 키우는 생각을 한다. 내 애는 어떻게 해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지레 불안해진다. 과연 내가 올곧은 마음가짐과 합리적인 사고력을 심어줄 수 있을까. 나 역시 부족함 투성이지만 최소한의 기본은 지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자식이 과연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주위만 봐도 기본도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던가.


가만 보면, 이 불안은 타인을 깔보는 습성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편견덩어리다. 공부나 일을 못하는 것 뿐 아니라 사회적 지능이 낮거나 답답해 보이는 사람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그걸 판가름하는 기준은 전적으로 나 자신이다. 나보다 못 나면 답답해하지만, 막상 그렇게 여겼던 사람이 좋은 성과를 보이면 약간은 인지부조화가 온다. 나의 구린내 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습성은 결국 좁은 인간관계나 직장에서의 마찰로 드러난다.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나의 시야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결국 나 이상의 인간과는 교류하지 못하는 그런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당연히 완전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지금보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둔한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보다 에너지가 넘쳤고,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속도도 빨랐다. 부족함과 가능성이 뒤섞여 있는 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요즘, 다짐을 새로 한다. 사람을 좀 더 믿자고. 멍청해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내가 갖지 못한 지혜를 품고 있을 수 있고, 답답해 보이는 이도 언젠가는 나를 앞지를 수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테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논문 하나가 붙었다. 싸팔이 주도한 논문이다. 하나라도 얻어걸리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싸팔한테 빚 한 번 졌다. 사실 내가 주도한 것이 떨어진 것이 좀 아쉽긴한데, 뭐 괜찮다. 애초에 경쟁상대는 우리 랩이 아니라 전세계의 박사 지망생들이니까. 그런 질투는 의식적으로라도 안 할거다.


오정세 배우가 백상에서 한 수상소감이 떠오른다. 본인은 늘 똑같이 열심히 작품들에 임했는데, 어떤 건 잘 안 되고 어떤 건 잘 됐다고. 논문도 그런 것 같다. 특히 요즘 구린 리뷰시스템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니 나는 꾸준히 내 거를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나도 나의 동백을 맞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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