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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와 달러의 미래

  • 작성자 사진: Minwu Kim
    Minwu Kim
  • 2022년 1월 20일
  • 9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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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재주가 없는 탓에 쓸데없이 글이 많이 길어지게 됐는데, 핵심 내용은 맨 밑에 4번 사회양극화와 5번 경제위기 정도이다. 내 글이 궁금하지만 다 읽기는 싫다면 그 쪽 부분만 봐도 충분하다. 당신들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어차피 이런 글을 찾아 읽으시는 분이라면 앞에 배경지식 설명 없이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간략하게 일주일 간의 뉴스를 생각나는대로 몇 개 툭툭 던져보자.



1. 연준이 다시 한 번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잡을 것이다"라고 대못을 박았다. 미국 10년물 채권금리는 1월 19일 기준 약 1.88%로 올랐고 장단기금리차는 0.9에서 0.8까지 떨어졌다 . 원화 기준 달러 환율은 현재 약 1190선에서 꾸준히 오르고 있다. 미국 중소형 기업 지표 러셀2000지수는 올해 상승분을 거의 다 반납했다. 나스닥도 고점대비 무려 10%가 떨어졌다. 침체시엔 일반적으로 중소형주들이 먼저 무너지고 그 다음 대형주들의 차례가 온다. 러셀은 항상 s&p500을 선행하는 성격이 있는데, 지금 상황상으로는 당분간 S&P500은 큰 매력이 없어보인다.



2. 내가 아부다비에 도착한 날 예멘 반군의 UAE 드론 습격사태가 발생했다. WTI는 86달러로 7년간 최고치를 찍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군사적 긴장으로 원유 공급에는 더 큰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일부에선 올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 기간에는 원자재들이 강세를 띄는데, 공급망 문제로 원자재 강세가 가속화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년 전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중국 원자재 생산규제를 예상하고 원자재 ETF를 좀 매수했는데, 뜻밖의 헷지가 된듯 하다.



3. 중국이 금리인하를 발표했다. 중국은 범지구적 돈뿌리기에서 가장 일찍 빠져나와 긴축을 시행했는데, 이번에 오미크론 충격으로 다시 금리인하를 결정했다. (12월 CPI지수가 마이너스로 나왔다). 저번 글에서 미국의 발빠른 긴축의 이유로 정책적 여력확보를 꼽았는데, 중국이 정확히 반템포 빨리 그 길을 밟고 있는 듯 하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만큼 중국시장은 세계시장을 선행하는 경향이 있다. 당분간 시원한 상승장은 기대하기 힘들어보이며, 성장주에서 가치주로의 로테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4. 마이크로소프트가 액티비전-블리자드의 $70B짜리 초대형 딜을 발표했다. 발표직후는 ATVI는 30%까지 폭등했고 일시적 거래정지가 되었다. 몇 달전에는 페이스북이 메타로 사명을 변경하더니 이번엔 MSFT가 게임회사를 사버렸다. 빅테크가 하나 둘 메타버스에 달려들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일지, 아니면 21세기 봉이 김선달인지, 조만간 암호화폐, NFT, 그리고 메타버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나중에 한 번 써봐야겠다.



  이만하면 가장 굵직한 것들은 모두 얘기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자. 오늘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와 그 미래에 대해 다뤄본다.





  내 블룸버그 앱은 쉬지 않고 울려대고, 유튜브에선 김단테 선생님이 하루가 멀다하고 렉카차를 끌고 오고, 머스크는 오늘도 트윗을 올리고, 달리오는 또 새 책을 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들의 뒤꽁무니를 무턱대고 따라가다간 얼마 안 가 자빠지고 말 것이다. 뉴스는 퍼즐조각과도 같다. 퍼즐조각을 모으는 것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함이고, 그림 없이 무식하게 모아나가기만 한다면 주머니가 빵빵해져 걷는데 방해만 된다. 뉴스들을 소화시키는데에는 하나의 큰 틀이 필요하고, 그걸 있어보이는 말로 초장기적 시야라고 한다.



  미국의 기축통화 지위 포기와 장기부채사이클의 끝이라는 큰 뼈대에 살을 붙여나가며 내 지식들을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다. 이 뼈대가 있다면 중국의 일대일로와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 그리고 삼성의 미국공장 설립을 모두 하나의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축통화의 역사를 알려면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브레튼우즈 체제, 즉 달러의 금본위제까지만 이해하면 충분하다. 금태환이란 말 그대로 돈을 들고오면 금으로 바꿔준다는 것, 좀 더 있어보이게 얘기하자면 금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이다. 금태환을 알기 위해선 일단 금에 대해서 조금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금은 국가가 발행하는 종이쪼가리와는 출신이 다른 유서깊은 귀족이다. 희소성과 불변성을 동시에 지닌 금은 가장 원시적인 화폐이며 달러보다도 더한 환금성을 갖고 있다. 즉 세상 어딜가나 돈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단어부터 "환금성"이다) . 그래서 부자아빠 기요사키는 금을 '신의 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금 더 유식한 척을 해보자면, 애초에 화폐라는 것이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무거운 금을 들고 다니기 힘드니 종이로 금 보관 증서로 만들어 간편하게 거래하는 것부터 시작된 것이다.



  19세기 초 기축통화국이었던 대영제국의 전성기가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막을 내리고 1931년 파운드는 기축통화 지위를 잃어버린다. 당시 급부상 중이었던 미국은 착실히 금을 모아나가기 시작했다. 1933년에 미국은 그 유명한 루즈벨트 행정명령 6102호를 시행하여 민간의 금 소유 불법화했다. 이와 더불어 샌프란시스코 골드러쉬 대박이 터지고, 세계대전에서 모든 열강들이 자신들의 금을 가장 안전한 금으로 대피시키며 미국은 전세계 70%의 금을 손에 쥐게 된다.



  결국 미국은 1944년 브레튼우즈체제를 선포한다. 이로써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금태환을 실시하고 나머지 화폐들은 달러와 연동이 되었다. 전세계가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에 순응하는 댓가로 미국은 자국의 막강한 해군력으로 전세계 해상무역로를 개방하게 되었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유럽, 일본의 경쟁력 강화로 인해 미국의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고, 1960년대에는 존슨 대통령이 가난과의 전쟁에서 많은 재정 지출을 감수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전에서도 많은 군비지출을 하게 되었다. 30년간 벌진 못하고 써대기만 했으니 달러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대로 가다간 곳간의 금은 바닥나고 화폐는 휴지조각이 된다. 결국 1971년 닉슨대통령은 금본위제를 철회해버린다. 그리고 처음으로 신용화폐가 도입이 된다 (굳이 따지자면 그 전 남북전쟁 때 재무부 신용으로만 찍어낸 그린백이 있는데, 그건 국채 담보도 하지 않는 국가적 금융사기에 가까우니 논외로 치겠다). 신용화폐란 말 그대로 믿음에 기반한 화폐이다. 금본위체제에선 돈을 금으로 바꿔주니 믿음 따위가 필요 없는데, 신용지폐는 그저 "나 미국이야~ 나 믿지?" 하고 차용증, 다른 말로 국채를 주고 뿌리는 돈이다. 극단적인 예시로 미국에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거나 화폐개혁을 해버린다면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달러는 쓰레기가 된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달러의 기축통화의 지위는 철옹성과도 같다. 현재 전세게 약 80%의 금융거래는 달러로 이뤄지고 있고,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외환위기를 두려워하며 미국채를 사들인다. 왜 달러가 여전히 기축통화인지, 미국은 어떻게 달러의 신용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오일쇼크를 알아봐야한다.



  1973년, 중동전쟁에서 서방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중동 산유국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기름값을 무려 4배나 올려버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석유가 쓰이지 않는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산 단가가 급격하게 올라버리자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가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달러 가치는 폭락했다. 기축통화의 핵심 중 하나는 안정성이다. 가치가 크게 변하지 않아야만 전세계 거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안정성이 무너진 일례로 최근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의 예시를 들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엘살바도르에선 식당에서 계산할 때 "지금 비트코인이 너무 싸니까 10분 있다가 결제할게요" 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전국민 단타대회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달러 가치가 폭락해버리면-달러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고-사람들은 달러로 거래하지 않는다.



  무너지는 달러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외교천재 헨리키신저는 묘안을 내놓는다. "금으로 담보할 수 없으면 다른 걸로, 즉 석유로 담보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걸 줄여서 페트로달러 (petroleum+dollar)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키신저는 사우디아리비아를 찾아간다. 2차대전까지 중립을 유지했던 사우디는 이탈리아에 공격을 당하게 되어 외부 강국의 도움이 필요했고, 미국은 기축통화 지위를 위해 석유가 필요했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맞았던 두 나라는 같은 배에 올라타게 된다. 1974년 양국은 비밀협약을 맺었고 약 40년 후 비밀 협약의 내용이 공개가 됐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은 사우디의 석유를 대량 수입하여 군사적 지원을 하고, 사우디는 원유 판매대금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한다 (나중에도 얘기하겠지만, 국채 매입을 강요하는 이유는 달러가 시장에 돌아다녀 달러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2016년 블룸버그의 정보공개 요구에 따라 공표 된 사우디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총 1170억 달러이지만, 실제로는 이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가 예상된다.


  미국은 사우디로 확보한 석유를 오직 달러로만 거래한다. 석유를 구입하기 위해 전세계는 당연히 달러를 찾게 되었고, 달러의 가치는 다시 상승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라크 전쟁의 역시 이러한 그림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표면상의 명분으론 핵위협과 테러조직에 맞서는 전쟁이라고는 했지만, 그 밑에 숨겨진 근본적인 원인은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사수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전쟁 발발 전 이라크는 석유를 달러가 아닌 유로로 구입하였으나, 전쟁 후에는 군비 조달을 위한 지나친 국채 발행으로 달러가치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달러로 석유를 구입하였다.



  그렇다면 미국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점은 세뇨리지 효과, 쉽게 말해서 그냥 돈찍기 치트키이다. 세뇨리지란 지폐의 가치와 지폐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의 차이를 뜻한다. 100달러 지폐의 제조 원가가 1달러라면, 둘의 차익인 99달러는 그대로 국가의 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달러나 엔화 같은 기축통화만 가능한 것이다. 08년 금융위기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쉼 없이 달러를 찍어냈는데, 돈을 찍어내도 전세계가 그 돈을 계속해서 필요로 하니 달러를 계속 찍어내도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 대한민국은 돈복사 치트키 없이 정정당당한 게임을 해야한다. 해외 자본시장에서 수요가 없는, 한국인만 쓰는 원화를 한국은행이 대책 없이 찍어낸다면 이를 흡수할 수요가 없어 원화가치는 속절없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한국이 돈 벌려고 피땀 흘리며 반도체 만들 때, 천조국형님들은 팔자 좋게 종이나 인쇄하면서 돈을 쓸어담는 것이다.



  그 외의 이점 몇 가지를 또 얘기해보자면, 미국은 외환위기 따위는 겪지 않는다. 달러가 표준이니 외환보유고 관리 같은 건 큰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막말로 달러가 없으면 당장 윤전기로 찍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자금조달도 큰 부분이다. 각나라들은 외환보유를 위해 미국국채를 많이 사들이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미국은 매우 낮은 할인율로 국채를 팔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구매력도 높아진다. 달러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니 구매력이 강력하다.



  원론적이고 재미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썼다. 분명 저번에 나 보라고 쓰는 글이라고 했건만, 몇몇 우리 독자분들의 호응이 좋아 이렇게 과잉친절을 한 번 베풀어 보았다. 내가 진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부터이다. 현재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미국은 기축통화 지위를 포기해버릴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문제는 향후 10년, 내지는 20년 재테크의 성패를 가르는 키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하나 간략히 나열해보도록 하겠다.



1. 셰일가스 혁명:


  사우디와의 비밀협약은 페트로달러 시스템 뿐만 아니라 석유를 확보하기 위함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미국은 원유 수입국에서 순수출국이 되었다(미국은 이제 하다하다 땅 파면 기름도 나온다. 미국은 '문명' 난이도 최하 맵이다). 원유 확보의 타당성을 잃은 것이다.



2. 냉전후 불필요한 군사지출:


  미국은 기축통화를 유지하는 이유를 다른 나라들에게 자국의 해군력으로 국방지원을 제공했다. 당시 군사지출은 냉전시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함도 있었기에 충분히 정당화 되는 지출이었지만, 냉전이 끝나버린 지금 타당성이 다소 퇴색되었다. 약간 억지일수도 있겠지만, 트럼프의 주한미군 비용 인상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아무튼 결국 지금은 미국이 전세계 경찰 노릇을 하는 것 오로지 달러를 위해서인 것이다.



3. 중국의 부상:


  거품이니 시장조작이니 뭐니 해도 중국의 덩치가 커져버린 건 부정할 수 없다. 2차대전 때만 해도 전세계 GDP 중 미국이 40%를 차지했는데, 2022년에는 20%로 반토막이 나버렸다. 전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만큼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해 더 많은 재정적 불안정성을 감수해야한다.



4,5번이 제일 중요하고 또 제일 재밌는 얘기다. 앞에 잘 읽히지도 않는 글은 4,5번을 위한 포석이었다.



4. 사회 양극화 :


  아까 구매력 얘기를 했었는데, 이에 대해 조금만 더 상세하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도 그걸 받아내는 전세계적인 수요가 있기 때문에 달러가치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자기강화적인 성격을 띤다.


  두가지 경우로 나눠서 보자. 첫번째는 미국 경제가 좋을 때이다: 미국 경제 호황 - 미국 투자를 위한 해외 자본 유입 - 달러 수요 증가 - 달러가치 상승. 이건 미국이 아닌 어느나라를 대입해도 말이 되는 당연한 경제학 상식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나빠지면 어떨까, 일단 일반적인 다른 나라였다면 아까와는 정확히 반대로 움직인다. 한국을 예시로 들어보자. 한국 경제 불황 - 해외 자본 유출 - 원화 수요 하락 - 원화가치 하락. 하지만 이건 비기축통화국의 경우이다.


  미국의 불황은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미국 경제 불황 - 미국 불황은 전세계 경제 불황을 의미 (구태여 덧붙이자면, 최대 소비국 미국의 소비력이 떨어지면 중국 같은 수출국은 수요감소라는 직격탄을 맞는다. 사람들이 미국 CPI지수를 그렇게 신경쓰는 이유이다.) - 안전한 곳으로 자산 이동 - 가장 안전한 달러/미국국채 매입 - 달러 유동성 감소 - 달러 가치 상승. 아이러니하지만 미국 경기가 안 좋아도 달러 가치는 오른다. 말 그대로 대마불사, too big to die이다.


  정리하자면 미국 경기가 좋든 나쁘든 달러가치는 오른다. 이것 때문에 코로나 이후 연준의 무지막지한 돈뿌리기에도 가치가 떨어지긴 커녕 1200선을 뚫을 기세이다.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좋은 것 아닌가 싶지만 동전은 항상 양면이 있다. 기축통화제도는 노동가치의 말살과 사회양극화를 먹고 산다. 비기축통화국 같은 경우 경기 불황시 화폐가치 하락으로 가격경쟁력을 갖고 해외수출을 회복하는 자정작용을 받는다. 하지만 미국 같은 경우 경기가 좋지 않아도 화폐가치가 그대로니 제조업 같은 노동집약산업들이 죽을 쑤는 것이다. 달러 기반의 막강한 금융업은 호황을 누리되 노동의 가치는 박살이 난다. 러스트 벨트의 쇠망, 버니 샌더스 같은 극좌적인 정치인의 득세, 소외 당한 백인들의 무더기표를 끌어안은 트럼프의 당선, 그리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테러까지,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이유는 달러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금만 더 이어 나가보자. 과거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국은 값싼 노동력으로 확보한 가격경쟁력으로 수출기반 고속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자동화 혁신으로 생산단가에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고, 이제는 기술력으로 싸우는 시대이다. 기술력이라면 또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국이다. 이제 미국이 해볼만 한 판세가 된 것이다. 아디다스가 중국에서 철수하고 자국 독일에 로봇 공장을 세웠고, 바이든은 파격적인 절세를 약속하며 자국 기업들에게 돌아오라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크고 작게 홍역을 치른 미국인데, 앞으로도 대중 의존도를 줄이고자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5. 경제 안보:


  기축통화는 트리핀의 딜레마를 안고 산다.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건 전세계가 달러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 말은 즉슨 미국이 달러를 전세계로 공급해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 국제무역에서 달러가 부족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달러를 계속해서 찍어낸다면 달러의 가치는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불안정성이 생기는 것이 트리핀의 딜레마이다. 그래서 트리핀은 달러는 미국의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부채 없이는 기축통화로써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의 국가부채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고 코로나로 인해 부채 커브가 전례없이 가파르게 꺾였다. 구체적인 숫자를 얘기하자면 30조 달러, 원화로 3경 6천조에 달한다. (한국 GDP가 1.6조 달러, 20을 곱하면 32조...) 아무리 미국이어도 이 정도 부채는 갚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주기적으로 부채상향 한도를 늘리고 있다. 사실 말이 한도 상향조정이지, 그냥 디폴트 선언이다. 어느날 전세계 모든 채권자가 미국에게 돈 내놓으라고 한다면 미국은 바로 파산이다. 미국은 그 많은 부채를 갚을 수도 없고 갚을 생각도 없다. 요즘엔 아예 "확 안 갚아버리는 수가 있다?!" 하며 되려 채권자에게 윽박을 지르는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이런 시스템이 유지가 되고 있다.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고, 무역흑자국들은 지속적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준다. 미국은 기축통화의 이점을 누리고, 다른 나라들은 환율을 낮게 유지하며 수출 흑자를 누린다. 좋게 말하면 선순환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폰지사기와도 닮아있다. 아무튼 현재까지 다들 이 암묵적인 룰에 순응하고 고분고분 국채를 매입하여 자신들의 달러를 미국에 반납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시스템에 반기를 들면 어떻게 될까. 실제 오바마 정부 때 사우디가 미국과 마찰이 생기자 "미국국채 다 팔아버리겠다"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다. 비록 사우디가 전량 매도를 했을 떄 가장 많은 손해를 보는 쪽은 사우디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지만, 아무튼 최대 패권국으로써 타국에게 자신들에게 카드를 쥐어는 것은 미국이 지양하고 싶을 것이다.


  흐름을 타서 얘기는 미중 패권전쟁으로 넘어간다. 중국이 이런 시스템의 허점을 노리고 공격을 하는 중이다. 13년도 이후 중국의 미국채권 보유량이 고점으로 찍고 현재까지 하향세를 그리는 중이다. 앞서 말한 무역흑자국이 다시 미국국채를 매입하는 암묵적인 룰을 깨버린 것이다. 그 대신 2013년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시작한다. 물론 표면적인 명목으론 미국의 해상봉쇄를 미연에 방지를 위함이라고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본인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에 돌려주지 않고, 그 대신 전세계의 실물자산과 인프라를 빠르게 취하겠다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이런 이유로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청나라 때 채권을 들먹이며 중국에게 갚으라고 한 것이다)



  글이 처음 계획보다 좀 많이 길어졌는데 지금이라도 결론을 내보자. 앞서 설명한 이유 탓에 미국은 언젠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내려놓을 것이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달러의 기축통화 마감시한을 앞으로 확 당겨왔다. 미국의 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실물시장과 금융시장과의 괴리, 즉 양극화로 신음하고 있다. 여기에 금리까지 올려버린다면 가뜩이나 감당 안되는 부채는 더 늘어나고 말 것이다. (1%만 올려도 부채가 3000억 달러 더 불어난다)


  그저 똑똑한 척이나 하려고 이런 공부를 하는 고상한 부류는 되지 못한다. 결국 돈 벌자고 하는 다분히 실용적인 공부이다. 돌고 돌아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기회로 만들고 수익을 낼 것이냐이다. 버핏옹은 미국시장을 의심하지 말라고 했고, 본인이 죽는다면 버크셔의 자산 90%를 S&P500에 집어넣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버핏의 말은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때만 유효하다. 미국이 기축통화를 포기한다면 더 이상 20년간 아름답게 우상향하는 미국시장의 모습을 보긴 힘들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5년 후가 될 수도, 50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성투 하고 싶다면 미국의 동향, 특히 달러의 동향에 시선을 지속적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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